항일 의병단체인 대한독립단에 소속된 문남규(文南奎·?∼1921)는 1921년 평북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순국했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의병운동가들이 항일 무장투쟁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결성했다. 이들은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회복해 고종 황제시대로 돌아가자는 복벽(復(벽,피))주의를 주장했다. 국내외에 지부 100여 개를 두고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에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2010년 국가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은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 보도를 근거로 문남규를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같은 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 건립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며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 사실을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이북5도위원회에도 명단을 통보했지만 후손은 나타나지 않았다. 훈장증은 국가보훈처가 보관 중이다.
▷어제 자진 사퇴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제적등본에 기재된 조부 이름이 독립운동가 문남규와 한자까지 똑같다. 문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둔 22일 제출한 제적등본을 검토한 국가보훈처는 전사(戰死) 지역도 평북 삭주로 문 후보자 조부의 원적지와 같다며 동일인이라고 추정했다. 문 후보자의 작고한 부친 문기석(1914년생)은 생존 당시에 “7세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친이 증언하는 문 후보자 조부의 사망연도와 문남규의 순국연도인 1921년이 일치한다.
▷문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 부르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지로부터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대한독립단 대원인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월남한 이북5도민의 애절한 가족사가 엿보인다. 이제야 부랴부랴 할아버지 찾기에 나섰으니 평소 조상의 뿌리를 탐구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다. 늦었지만 족보라도 찾아 보훈처에 제출해야 할 판이다. 그나저나 독립운동가의 손자에게 ‘친일’ 딱지를 붙여 총리 후보자 자리에서 쫓아낸 사회 일각의 세력을 독립투사 문남규가 저승에서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