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반민족 역사관 논란에 휩싸였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14일 만인 어제 자진 사퇴했다. 문 전 후보자는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며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원점에서 다시 후임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홍원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이후 총리 후보자가 두 번씩이나 연이어 물러났으니 ‘인사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첫 언론인 출신 총리 후보자로 주목받았으나 언론인 시절의 칼럼과 교회 장로로서의 강연 때문에 논란을 빚어 결국 낙마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와 위안부 관련 발언이다. 문 전 후보자는 자신의 역사의식과 ‘책임 총리론’에 대해 국민 앞에 좀 더 성실하고 소상하게 설명해야 했지만 충분치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대응 태도에 총리 자질에 대한 의문이 커지기도 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그 자리에 걸맞은 인성과 자질, 업무능력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제도가 국회의 인사청문회다.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는 동시에, 국회 밖에서 일부 언론이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무차별한 의혹을 제기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0년 도입됐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자의 재산이나 병역 문제가 아닌 역사의식에서 불거진 이번 ‘문창극 파문’이야말로 인사청문회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검증과 토론을 해볼 만했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사퇴 기자회견 직후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2주 동안 국회로 청문요청서를 넘기지도 못하고, 지명을 철회하지도 못했던 데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국회 인준투표 부결이든 지명 철회든 김 실장 책임론이 확산되고, 김 실장의 유임을 전제로 새로 짜놓은 2기 내각과 3기 청와대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부담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자가 사퇴한 마당에 김 실장이 연이은 총리 후보자 인사 실패의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공식 라인을 배제한 측근과 비선의 인사라면 더 위험하다.
인사시스템 안 바꾸면 민심 잃을 수도
대통령의 힘과 권위는 인사에서 나온다. 6·4지방선거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던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문 후보자의 역사관 논란이 불거진 뒤 다시 40%대로까지 곤두박질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왜 개각을 결심했는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 개혁을 절감했고 그 일환으로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6·4지방선거에서도 민심은 여야와 대통령에게 준엄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박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주자’는 데로 모아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사가 감동은커녕 오히려 실망과 불안감만 주는 데 대해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도덕성 논란과 추문, 자질 미달 시비 등으로 후보 딱지를 떼기 전이나 임명된 뒤 중도 낙마한 고위 인사가 손가락으로 다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박 대통령이 어제 청문요청서 제출을 재가한 후보자 중에도 김명수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처럼 흠결이 작지 않은 사람도 포함돼 있다. 언제까지 이런 인사 실패를 되풀이해야 하는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