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동기-의미-사용법 적은 해설서 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은 현재 소장자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훼손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DB·문화재청 제공
이 해례본은 현재 배 씨가 갖고 있습니다. 무죄 판결이 나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겠다던 배 씨는 현재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국보급 문화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과연 무사한 걸까요.
○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 법적 분쟁 속으로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 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에 사는 골동상 조모 씨가 펄쩍 뛰었습니다. 조 씨는 “그 해례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집안 유물이다. 배 씨가 내 가게에서 고서적들을 30만 원에 사가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는 배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요. 조 씨는 2011년 6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대법원이 “해례본을 절취한 배 씨는 조 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한 겁니다.
그러나 배 씨는 이를 거부한 채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해례본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배 씨는 “내가 훔쳤다면 국보 지정 신청도 안 했을 것이다. 해외로 튀어도 벌써 튀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난감해졌습니다. 배 씨가 해례본을 내놓지 않자 문화재청은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사소송이 시작된 것이지요. 배 씨는 2012년 2월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이번 최종 상고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난 겁니다.
그럼,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것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인 1446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그 의미, 사용법 등을 소개한 해설서랍니다. 여기서 해례는 ‘예를 들어 해설을 한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 당시엔 이 내용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냈습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서 만든 책이 아니라 목판으로 도장 찍듯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권을 만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이가 삭아 사라졌을 수도 있고 불에 타 버렸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진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 권뿐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편의상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것과 구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답니다. 상주본이 간송미술관 것과 동일한 판본이라고 하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상주본은 어디에
그런데 걱정입니다. 국보에 버금가는 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배 씨는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나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무죄로 판결한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고 “그것이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자 배 씨는 마음을 바꿔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한글, 훈민정음에 관해 가장 소중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간송미술관본과 상주본 두 권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