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도지사에게 듣는다] [동아일보-채널A 공동 인터뷰]<9>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
“목숨을 걸고 대구에 변화와 혁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절실한 호소로 대구시민의 선택을 받은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 그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달구벌의 진취적 잠재력을 깨워 대구가 역동적인 국제도시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구 표심은 “이제 새누리당 텃밭 운운은 듣기도 싫다”와 “그럼 대안이 뭐냐”는 기류 사이에서 저울질을 거듭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권영진이라는 ‘물건’에 조금씩 다가갔다. ‘새누리당은 밉지만 권영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대구시민들은 ‘변화와 혁신’의 권영진이냐, ‘상생과 화합’의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냐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다 권영진을 선택했다. 권 당선자는 17일 대구시청 부근 임시 집무실에서 동아일보, 종합편성TV 채널A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동아일보 박원재 부국장과 정연욱 정치부장이 진행했다.
“내가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될 것도,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특히 서울에서는 ‘대구는 어렵겠다’는 분석이 많았다. 4월 29일 경선에서 후보가 되자 ‘4·29 반란’이라는 말까지 나오더라. ‘대구가 이제 진짜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본선에 김부겸 후보가 버티고 있었지만 시민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진정성을 보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안 찍으려고 했는데 권영진 같으면…’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희망을 봤다. ‘새누리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을 깨고 치열한 선거를 만들어낸 것은 대구의 미래를 위해 매우 바람직하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비박’이고 ‘비주류’인데 승리한 요인은….
“친박이나 비박이라는 구분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말은 변화가 절실한 유권자들에게는 무의미했다. 변화와 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누구냐가 유권자들의 판단이었다. 서울부시장 경험도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 대구를 맡겨도 되겠다는 인식이 점점 늘어났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꾸준히 조력을 하는 점은 시민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다음 달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있다. 당 쇄신에 대한 의견은….
“당 안에 혁신과 개혁을 위한 동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일관된 목소리가 없다. 국민의 요구는 강한데 이에 부응할 세력이나 흐름이 없는 것 같다.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개혁과 쇄신, 변화를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하도록 뒷받침하는 게 옳은지, 국민 요구에 적극 대처하는 게 옳은지 어려운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관계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민심과 멀어질까 걱정이다.”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자가 남부권 신공항을 가덕도로 유치하겠다고 공언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선거가 급해서 가덕도에서 부산시당 행사를 열고 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남부권 신공항을 선거용으로 써 먹어서는 안 된다. 이전에도 입지 문제로 부산과 대구 등 영남권 지자체들이 싸우다가 무산되지 않았나. 수도권 중심이 강한 나라에서 부산은 가덕도, 대구는 밀양 식으로 부딪치면 또 남부권 공항 무용론이 나온다. 입지를 객관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승복하기로 한 합의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략적으로 어찌 해보려고 하면 결과에 누가 승복하겠나. 공정한 입지 선정이 최우선이다.”
“대구가 닫힌 도시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나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4·19혁명의 도화선은 대구에서 시작된 2·28민주운동이다. 대구는 개방적이고 혁신적 도시였는데 대통령을 여러 명 배출하면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형성됐다고 본다. 이번 선거는 대구의 진취적 전통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변화와 혁신을 내세운 내가 당선된 것도 시민들 가슴에 묻혀 있던 이런 정신이 뿜어 나왔기 때문이다. 야당 후보가 40%를 득표한 것도 대구의 개방성을 보여준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 방안은….
“시민 스스로 시정의 주체가 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의견 수렴을 위한 시민원탁회의와 시민정책공모, 시민행복콜센터 같은 정책이 그것이다. 욕을 얻어먹더라도 시민들이 새로운 생각으로 대구를 바꾸는 데 능동적이어야 대구 혁신도 가능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할 것이다. ‘시민이 시장’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위해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핵심 경제공약은….
“매년 청년 1만여 명이 취업을 위해 대구를 떠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반드시 바꾸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목숨을 걸겠다고 외쳤다. 청년이 떠나면 도시가 활력을 잃고 기업 유치도 안 된다. 이제 1600만 m² 규모의 국가산업단지와 테크노폴리스 등 최적 여건을 갖춘 산업단지가 조성됐다. 교통과 공업용수, 지원시스템이 아주 좋다. 국제적 대기업 3개 유치와 중기업 300개 및 중견기업 50개 육성, 일자리 50만 개 창출이 목표인 ‘3355’를 약속했다. 이를 토대로 대구가 창조경제수도가 되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
권 당선자와의 인터뷰는 26일 오전 8시 채널A ‘새 시도지사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다.
▼ “부겸이 형을 지지한 표심 헤아릴 것” ▼
‘끼리끼리 닫힌 풍토’ 쇄신 강조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왼쪽)가 동아일보 박원재 부국장(가운데), 정연욱 정치부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김부겸 후보가 보낸 축하 난은 책상 가까이에 놓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겠다는 의미다. 권 당선자와 김 후보는 오래전부터 서로 ‘부겸이 형’ ‘영진이 아우’라고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권 당선자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분출된 대구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갈증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기본은 개방적인 도시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끼리끼리 닫힌 풍토, ‘그냥 이대로’라는 소극적 분위기를 공직사회부터 바꾸려고 한다. 그는 “나부터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 시장이 시민을 어떻게 모시는지 목격하면 공직자들의 태도도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좋은 뜻에서 사고를 많이 치겠다”는 그의 열정이 달구벌을 어떻게 달굴 것인지 기대를 모은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