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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구자룡]CF 하나로 드러난 韓中관계의 ‘맨얼굴’

입력 | 2014-06-27 03:00:00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조선(북한)도 감히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식 명칭)을 자신의 것이라 하지 못했는데 한국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헝다(恒大) 잘했어!”

한류 스타 김수현의 소속사 키이스트가 25일 중국 헝다그룹의 생수광고 모델 계약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중국의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김수현과 전지현을 비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생수병에 표기된 취수원 명칭이 백두산이 아니라 창바이산이라고 표기된 사실을 한때나마 문제 삼았다는 점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국 누리꾼은 “위약금을 물고 싶지 않아서겠지”라고 비꼬기도 했다.

‘창바이산’이냐 ‘백두산’이냐 하는 명칭을 둘러싼 ‘기싸움의 기저’에는 동북 3성 일부 지방의 역사 주체가 ‘중국의 변방 소수민족’이냐 ‘한민족’이냐 하는 이른바 ‘동북공정 논란’과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 초특급 한류스타로 급부상한 김수현과 전지현의 생수광고 논란은 그 자체로만 보면 계약 내용을 둘러싸고 일어난 ‘평범한’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한중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사소한 일이 발단이 돼 언제든지 깊은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직은 한중 관계가 살얼음판에 가깝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경위야 어떻든 소속사에서 신속히 대응에 나서 파장은 커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엉뚱하게 비화할 수도 있었다.

다음 달 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양국 간 우호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과의 역사 갈등으로 한중 협력이 상대적으로 더 돋보인다. 하지만 한중 간에는 도처에 뇌관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은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당시 한국을 실망시킨 바 있다. 연평도 포격은 상호 간 무력 충돌로 간주했고, 천안함 폭침은 정확히 누구의 소행인지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한중 간에 잠복된 갈등은 매우 짧은 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

이런 생각은 ‘생수광고 소동’을 너무 확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핵 대응이나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위치 등에 대해 한중 간 입장 차이가 있을 때 양국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될 수 있다. 이번 파동은 소속사의 대응만으로 수습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뇌관을 해체해야 할지를 숙제로 던져주었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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