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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김 대리는 왜 직장을 그만두나

입력 | 2014-06-28 03:00:00

“우린 자유 찾아 떠나요”… 사표 내고 해외여행 훨훨




최태환(왼쪽), 허성혜 씨 부부가 지난해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모은 사진, 비행기 티켓 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온 뒤 삶의 여유를 찾았다고 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김가희(가명·27·여) 씨는 올해 1월 5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뒀다. 석 달간 준비를 마친 뒤 지난달 초 직장 동료와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 프랑스 체코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6개국을 50일 동안 돌아보는 일정이다.

김 씨가 다닌 직장은 국내의 한 대형 여행사였다. 입사 초부터 줄곧 대기업 출장 등을 전담하는 핵심 부서에 있었다. 그는 조직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20대에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며 “나중에는 더 도전하기 힘들 것 같아 지금 떠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행비용은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별로 없다. 김 씨는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취업할 자신이 있다”며 “취업이 안 되더라도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 관련 개인사업을 하거나 여행 서적을 쓰는 등 할 일은 많다는 것이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젊은 직장인이 점차 늘고 있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고 입사에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쓴다. 이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현재 일에 흥미 못 느껴… 떠나자”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2012년 5월 어느 날 최태환 씨(34)는 허성혜 씨(31·여)에게 넌지시 물었다. 둘이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 남짓 지난 때였다. 한창 즐거워야 할 때인데도 둘의 마음은 축 처져 있었다. 업무에 치인 일상 때문이었다.

“오후 10시 넘어 집에 들어오면 씻고 잠들기 바빴어요. 아침에는 허겁지겁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고요. 신혼집은 마치 하숙집 같았지요. 잠시 눈만 붙이고 나가는….”(최 씨)

최 씨는 당시 A백화점 6년 차 직장인이었다. 2007년 2월 숭실대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한 뒤 이 회사에 입사했다. 취업이 절박했던 다른 구직자들처럼 그도 100여 곳에 원서를 넣었고 5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최 씨는 ‘평판이나 근무 조건이 가장 나아 보이는’ A백화점을 선택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입사 때부터 회계 업무를 줄곧 맡았는데, 매일 숫자만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지루해졌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스스로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해 더욱 답답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책을 보면 애벌레들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가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저와 제 동료들 같더라고요. 하지만 사장이 목표가 아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 경쟁이 왠지 덧없게 느껴졌습니다.”(최 씨)

당시 직장생활 5년 차였던 부인 허 씨는 최 씨의 마음을 이해했다. “대개 남자가 가정을 책임진다고들 하지만 같은 직장인 입장에서 흥미 없는 일을 매일 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남편에게 ‘그만둬’라고 말했지요.”(허 씨)

허 씨에게는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회사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던 그 역시 야근할 때가 많았다. 초창기에는 일을 제대로 배운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몰랐지만 훗날 태어날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돈을 들여 육아도우미를 채용하기보단 직접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컸다.



“남들 눈치 보지 말자”


둘은 그해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사표를 내고 여행을 다녀온 뒤 새로운 마음으로 서로가 원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서로 다짐도 했다. 적지 않은 친구들이 “실업자가 되면 얼마나 불안한지 아느냐”, “옮길 곳이 결정된 뒤에 사표를 내라”며 만류했다.

통장 잔액도 많지 않았다. 돌아와서 당장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허 씨는 “‘둘 다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어떻게든 돈을 벌 수는 있을 것’이라며 서로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사정 끝에 결국 둘이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탄 때는 그 이듬해인 2013년 2월이었다. 당초 계획보다 반년가량 늦어졌다. 그만큼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둘은 한 달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를 돌아봤다.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들의 시선보다 자신의 만족을 더 가치 있게 삼으며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항상 어떤 관문을 통과하는 일에만 집중해온 것 같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더 의식해 왔으니까요. 대학 입학도, 회사 입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며 문을 지나친 거지요.”(최 씨)

“프랑스 마르세유의 현지인 민박집에 묵었을 때였어요. 주인아저씨께 ‘무엇이 성공한 인생이냐’고 물었더니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남들한테 인정받지 못한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더군요. 우리가 듣고 싶은 답을 들은 것 같았어요.”(허 씨)

덤으로 둘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최 씨는 “한 달 동안 매일 24시간 가까이 함께 있다 보니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면서 책임감도 많이 느꼈다”며 “여행이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소득”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슴 한쪽은 늘 불안했다. 비록 당당하게 자리를 박찼지만 귀국해서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탓이었다.

둘은 한 달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허 씨는 “귀국 후의 생활이 꿈에서 깬 것처럼 어색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곧장 스타벅스코리아에 경력사원으로 입사가 결정됐다. 허 씨도 한국리더십센터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둘은 “이전 직장에서처럼 지금도 야근을 하고 일도 많은 편”이라면서도 “목표가 명확해진 데다 여유를 즐기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나니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라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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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생활이여, 안녕”


여행에서 돌아와 아예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강성찬 씨(32)는 2009년 다니던 회사를 1년여 만에 그만뒀다. 27세가 되던 해였다. 그가 당시 몸담았던 곳은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IBM의 한국 법인이었다.

강 씨는 “많은 임원들은 저마다 성공한 삶을 사는 듯 보였다”며 “신입사원 교육 때만 해도 ‘이곳에 뼈를 묻겠다. 쉰 살에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고 떠올렸다. 이랬던 그가 사표를 낸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만 떠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강 씨는 사표를 낸 지 석 달 뒤인 2009년 6월 세계여행을 떠나 8개월 동안 20여 개국을 돌아봤다. 그는 귀국해서도 직장을 다시 잡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처럼 직장을 떠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등의 일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2011년에는 여행 기록을 담은 책 ‘방황해도 괜찮아’도 펴냈다. 강 씨는 “‘강성찬’이라는 톱니바퀴가 빠져도 얼마든지 다른 톱니바퀴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예 외국에 터를 잡은 이들도 있다. 김희영(32), 김혜리 씨(29·여) 부부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체코에 정착했다. 이들은 2012년 12월부터 프라하에서 한인민박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김희영 씨는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마치 조류에 쓸려 다니는 표류 선박 같았다”며 “예전처럼 매달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오지도 않고 민박 관리부터 마케팅, 회계까지 책임져야 하지만 한국 생활보단 행복하다”고 전했다.



떠나고 싶은 직장인들

많은 직장인이 이들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동아일보는 온라인 교육업체 휴넷에 의뢰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봤다.

직장인 9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회사를 그만두고 2주 이상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86.6%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오랫동안 일을 쉬고 싶어서’라는 의견이 43.4%로 가장 높았다. ‘해외에서 공부나 일 등 다른 기회를 찾으려고’(24.6%), ‘먼저 경험한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8.2%)라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응답자(106명) 중 88.7%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장기 여행 뒤 달라진 점을 묻자 대다수가 ‘넓어진 견문’(45.3%)과 ‘삶의 여유’(39.6%)를 꼽았다.

이에 대해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래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예전에는 직장에 다니면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개미처럼 일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운시프트(downshift)족’의 증가도 이러한 현상의 한 원인이다. 자동차 기어를 저속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다운시프트’에서 유래한 용어로 돈을 더 벌기 위해 빡빡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맘에 드는 일을 하며 느긋한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뜻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Y세대의 일과 삶의 균형-세대별 일의 가치를 통해 본 의미 및 역할’ 보고서는 흥미롭다. Y세대는 현재 20, 30대인 1977∼1995년에 태어난 사람으로 이들은 더이상 일을 위해 자신의 가정이나 삶에 대한 우선순위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의 행복보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희생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달리 비교적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자란 덕분에 부모들처럼 가족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조금 덜한 편”이라며 “무게중심도 회사보다 자신에게 더 많이 두곤 한다”고 설명했다. 한때 젊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스펙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경영학석사(MBA) 등에 진학해 ‘성공의 디딤돌’로 삼았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을 실제로 그만두기란 쉽지 않다. 본보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9.5%는 사표를 내고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떠나려고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문제로 ‘새 직장 구하기’를 꼽았다. ‘비용 마련’(21.9%)이나 ‘가족 설득’(8.1%)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러셀레이놀즈의 고준 상무는 “미국 등에서는 이직 과정에서 연봉이 더 오르는 등 다양한 경력이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한 번 회사를 떠난 사람은 또 떠날 수 있다고 판단해 경력직보다는 공채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떠나는 젊은 직원, 붙잡으려면

강성찬 씨는 입사한 지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8개월 동안 20여 개국을 둘러봤다. 이후 여행 기록을 담은 책 ‘방황해도 괜찮아’를 펴내고 영상 촬영도 하며 남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젊은 직원들을 떠나보내는 기업들은 고민이 깊다. 비용을 들여 교육을 시킨 뒤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즈음 직원이 회사를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국내 기업 35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교육 및 훈련에 평균 18.3개월, 1인당 비용은 약 6000만 원이 든다. 하지만 조기 퇴사한 신입사원 100명 중 80명은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임들은 사내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우려한다. 한 대기업 상무인 김모 씨(48)는 “우리가 신입사원일 땐 ‘회사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야근, 주말근무도 견뎌 왔는데 요즘 세대는 다른 것 같다”며 “잘못 꾸짖었다가는 사표를 낼까 봐 함부로 말도 못한다”고 혀를 찼다.

반면 젊은 직장인들은 “회사가 젊은 사원들의 불만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고 반박한다.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홍모 씨(28)는 “선임들은 일주일에 3, 4일은 야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닌데도 회사에 늦게까지 붙잡혀 있다 보니 오히려 일하고 싶은 의지가 감퇴하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직원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준 상무는 “젊은 직장인들은 대학생 때부터 인턴생활 등을 통해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사례, 경영자의 리더십 등을 많이 보고 들은 세대”라며 “입사 뒤 합리적 의사결정보다는 선임자나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세상을 주도하려는 창의적인 인재들이 대기업 입사를 꺼리고 벤처기업 등을 찾는 풍토를 기업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회사를 다니고 싶은 직장으로 인식하도록 경영자들이 사내 문화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육아, 보육 등을 고민하는 직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업무 배정이나 경력 개발 과정에도 직원들의 의견을 좀 더 많이 반영하는 식으로 기업 문화가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영신 교수는 “개인의 발전과 변화 속도를 조직이 따라잡기는 어렵고, 대기업일수록 그 격차는 더욱 크다”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 갑갑하다고 느끼는 직원이 많아질수록 기업의 미래는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과 여가를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기업이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한편 장기적으로 외부에 노출되는 기업의 이미지도 상승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창규 kyu@donga.com·강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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