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보다, 그 페이지에 한참을 멈춰 있었다. 이런 얘기 또한 떠올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이 탄 기차 안에서 한 젊은이가 소리쳤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아가느냐고. 그러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된 거라고. 나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는 스스로 바꿔야지.”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도리어 이런 무력감에 빠져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자꾸만 실망스러워, 자괴감이 들어, 외면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말, 외면하는 어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참 슬픈 세상에 살고 있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지만 아직도 나는,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만화 속 교수의 말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관찰하고 의문하는 아이였던 교수는, 어른이 되어도 관찰과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교수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찾아 온 정치가. 그는 결국,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어쩌면 그는 이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싶어 교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아도, 실은 누군가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아도, 실은 누군가 계속 의문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정치가의 선택을 용기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관찰하고 의문하는 것.
※이 글에 등장하는 만화는 가즈미 야마시타의 ‘천재 유 교수의 생활’입니다. <끝>
강세형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