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 83억달러 흑자 → 74억달러 적자로

입력 | 2014-06-30 03:00:00

韓-EU FTA 3년… 對EU 무역적자 커진 까닭은
‘韓 - EU FTA 3년’ 성적표




《 한국은 2004년 4월 발효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FTA 12건을 성사시켰다. 이 중 9개는 이미 발효됐다. FTA는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다음 달 1일로 발효 3년을 맞는 한-EU FTA를 결산해보면 무역적자가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등 외부요인의 영향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TA에 따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다음 달 1일이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3년을 맞는다. 정부는 EU와의 상호 시장개방에 따라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대(對)EU 무역수지는 2012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특히 자동차부문은 관세 인하 효과를 등에 업은 유럽산 자동차업체들의 공세로 안방 시장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 빗나간 낙관론

정부는 한-EU FTA 체결 직후인 2010년 10월 ‘한-EU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라는 자료를 내고 “EU와의 FTA 이행으로 매년 수출은 25억3000만 달러, 수입은 21억7000만 달러 각각 늘어 무역수지 흑자가 연평균 3억6000만 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29일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한-EU FTA 3주년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147억9000만 달러였던 EU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발효 첫해인 2011년 83억 달러로 줄었다. 이후엔 아예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해 2012년과 지난해 각각 10억 달러와 73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5월까지 26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 흑자 전환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EU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유럽 재정위기와 원화 강세에 따라 EU 수출 증가가 당초 기대를 밑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내 기업들이 일본에서 주로 수입해왔던 반도체 부품이나 설비, 자동차 부품 등을 관세가 낮은 유럽에서 사오기 시작한 것도 무역수지 적자 확대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2012년부터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EU산 원유와 나프타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일부 부품 수입처를 일본에서 유럽으로 바꾸면서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대(對)일본 무역적자 현상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었다”며 “유럽이 재정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안방시장만 내 준 자동차


그러나 EU 무역수지 악화는 한-EU FTA 체결의 가장 큰 수혜주였던 제조업 부문에서 수출실적이 부진하고 수입이 크게 늘어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는 한-EU FTA로 인한 효과가 미미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은 2010년까지 8%였던 유럽산 자동차 관세를 발효 시점인 2011년 7월부터 점차 줄여나갔다. 1500cc 초과 차량에 물린 과세는 3년 만인 올 7월 1일 철폐된다. 1500cc 이하는 발효 5년째인 2016년 7월 완전히 없어진다. EU도 기존 10%였던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같은 기준으로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EU에 대한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FTA 1년차(2011년 7월∼2012년 6월)에 전년 동기 대비 30.5% 늘어났지만 2년차(2012년 7월∼2013년 6월)엔 0.2% 증가에 그쳤다. 3년차(2013년 7월∼2014년 5월)에도 자동차 수출액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7.0%에 머물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체코, 슬로바키아, 터키 등에 연간 생산 20만∼30만 대 규모의 현지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FTA로 인한 관세 효과가 크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소형차들은 주로 현지에서 만들고 국내에선 중·대형차 위주로 수출하고 있다”며 “유럽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수출량 증대 효과도 거의 누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유럽산 자동차 수입액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년차 12.5%, 2년차 26.6%, 3년차 40.2%로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1년차에 28억 달러에 이르렀던 자동차 무역흑자도 2년차 21억 달러, 3년차 9억 달러로 급감했다.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2010년 6.9%에서 올해(1∼5월) 13.6%로 두 배 가까이로 확대됐다. 특히 수입차 중에서도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린 유럽 자동차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 “최혜국 대우 등 후속 협의 필요… 中企 적극 활용을”


메르세데스벤츠의 주력 모델인 E220 CDI의 경우는 2010년 6650만 원이던 가격이 현재 6200만 원으로 6.8% 떨어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다음 달 1일 1500cc 초과 차량에 대한 관세가 완전히 없어지면 유럽산 자동차들의 마케팅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수입차 점유율이 수년 내 20%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무역적자 확대에도 손놓은 정부


일각에서는 정부가 FTA 체결에 속도를 내기 위해 애초에 한-EU FTA의 기대효과를 부풀렸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EU FTA가 발효된 2011년 이미 유럽 재정위기와 유로화 약세 현상이 나타나면서 당초 기대했던 수준의 수출 증가 효과가 나기 어려웠는데도 정부가 한-EU FTA에 대해 장밋빛 분석만 내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EU를 상대로 한 무역적자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FTA 활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EU 수출품목 중 FTA로 인한 관세 철폐 및 인하 혜택을 받는 품목의 비율을 의미하는 한-EU FTA 활용률은 대기업은 91.2%에 이르지만 중소기업은 73.1%에 그치고 있다. 또 일본 등 수출 경쟁국들이 EU와 FTA 체결에 나서면서 한국의 EU시장 선점효과 축소가 우려되는 만큼 한국이 FTA 최혜국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EU와 FTA 후속 실무협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되면 일본이 EU와의 FTA에서 한국보다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어도 한국에 이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원산지 검증 절차 등이 복잡해 아직 FTA 혜택을 보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환경 등 비(非)관세장벽 완화나 최혜국 대우 확보 등 후속대책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