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머니 [잊지 못할 말 한마디]김희재(시나리오 작가·추계예술대 문학영상대 교수)
김희재(시나리오 작가·추계예술대 문학영상대 교수)
똑똑한 큰딸과 천재 언저리의 둘째 딸을 가진 부모에게 6년 뒤 느긋하게 찾아든 막내는 그저 귀염둥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글을 읽고 셈을 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 무엇을 해도 언니들은 훨씬 이른 나이에 잘 해냈으니 신기할 것도 기특할 것도 없다는 반응. 그보다 분하고 억울한 것은 그런 까닭으로 아무것도 배우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일찍 배워봐야 소용없어. 학교 들어가면 다 배울 거야. 그러니까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면 돼. 아니다. 넌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지당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크고 귀하고 탐스러워 욕망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고 그것은 다섯 살 꼬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렵게 확보한 공책 한 권과 연필을 들고 옆집 친구에게 갔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친구가 아니라 두 살 위 언니였다) ‘수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에게 한글과 덧셈 뺄셈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도둑질로 배운 한글을 앞세워 조금 일찍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힙 겹게 배운 한글, 어렵게 쟁취한 학생 신분은 그래서 내게 귀하고 귀했다.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싶었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모든 것을 쓰고 싶었다. 눈에 띄는 모든 책을 아무거나 읽었고 아무 데나 생각을 적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가 아무 데나 끼적거려 놓은 것들을 차곡하게 모아 내 앞에 놓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네가 단 하나의 문장을 쓰지 못하고, 단 하나의 작품을 쓰지 못해도 너는 이미 작가야. 엄마한테는 그래.”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한 배경 이야기는 아주 오랜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방 청소를 하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써놓은 무엇인가를 보고 조금 놀란 듯하다. 시하고 비슷한 모양을 갖춘 단상이었을 텐데 아마 별것 아니었겠지만 마냥 어린 막내로만 생각했던 녀석이 쓴 것이라 더 많이 놀란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갖고 큰언니가 다니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상담을 하셨다고 했다. 작가로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으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작가로 키우겠다고 글쓰기를 가르치거나 글을 쓰라고 한 적이 없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라고 한 적도 없다. 그저 너는 이미 작가라고. 단 하나의 문장도 쓰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러하다고 딱 한 번 말씀했을 뿐이다. 여러 동네를 기웃거렸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한 말씀이 주술이 된 듯 작가의 길로 돌아왔다.
교수로 회사 대표로 작가로 살아가는 이즈음 많은 이가 묻는다.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편하냐. 나는 대답한다.
“교수도 정년퇴직을 하고, 대표도 언젠가 물러날 자리지만 작가는 죽을 때까지니까요. 작가가 좋습니다.”
‘단 한 줄을 쓰지 못한다 해도 나는 여덟 살 그때부터 내 어머니께 작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