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결과는 아쉽지만, 나는 홍 감독이 ‘주어진 여건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본적 믿음마저 감독에게 주지 않는다면 누가 감독을 맡으려고 할까. 적어도 그는 실패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진 않았다.
매일매일 월드컵처럼 실전을 치르는 기업에도 성공과 실패는 반복된다. 축구대표팀 감독만큼이나 기업의 지도자는 중요하다. 특히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의 생각, 그리고 말 한마디는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신 회장은 ‘그룹의 회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거나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그리고 고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자기 문제를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면서 등장한 ‘유체이탈 화법’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홈쇼핑 비리 사건의 핵심에 있는 신헌 전 대표 그리고 함께 구속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홈쇼핑에서 상품을 팔려는 회사한테 뒷돈을 받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었다. 그 돈을 으레 업무비로 썼다. 그렇다 보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반응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적잖은 기업 임직원들이 ‘쟤네만 저랬겠어?’ ‘갑을 관계에서는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 실패와 기업의 비리 중 무엇에 더 분노해야 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래도 우리의 잠재의식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국가대표 감독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비해 거래 관계에서 ‘갑’이 되기는 쉽다.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아니면 가족 중의 한 명이 그런 힘을 가질 수도 있다.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만큼이나 중요한 우리의 역할은 ‘경제의 구성원’이란 점이다. 조직의 지도자는 그 조직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은 실패 후에 팬들의 거센 비난이 있을 걸 알기에 일찌감치 ‘내가 부족했다’고 했을지 모른다. 기업인의 잘못에 대한 법적인 잣대는 과거보다 엄격해졌다. 그럼에도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의 윤리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기업의 지도자는 여전히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