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경제부·crystal@donga.com
다른 어떤 가치보다 돈이 중시되는 듯한 사회에서 부자 부모를 만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을 기회를 거머쥔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상당수 자산가들은 자신이 가진 부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있다. 부자들의 재테크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증여 및 상속 계획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돈’이 아닌 다른 유산을 물려주려는 자산가도 많다. 최근에 만난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수십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는 40대 고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고객은 초등학생인 아들과 한 달에 한 번 주중에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다. 주중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 이들 중에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많다. 그 고객은 “아들에게 내가 가진 돈을 고스란히 물려줄 생각은 없다”며 “새벽부터 바쁘고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아들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가운데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이란 작품이 있다. 주인공인 고아 핍은 소원대로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된다. 그는 유산에 기대어 런던에서 ‘신사’로 행세하며 호의호식하며 살게 되지만 점차 무기력해진다. 일련의 사건들로 모든 상속이 취소된 후에야 그는 고향에서 대장장이로 일하는 매형 조처럼 조카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인간다운 삶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임을 깨닫는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의 졸업식 연설에서 “미래를 설계할 때 열정이 아닌 돈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은 불행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자녀 스스로 멋진 미래를 그린 후 그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데 힘이 되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부모들이 한국에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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