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열정, 젊어진 전통시장]<3>가업 잇는 청년사장들
《 “자식들에게 물려줄 거냐고? 시장바닥에서 고생하는 건 내 대에서 끝내야지….” 모든 상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전통시장에 미래가 있을까. 시장은 늙어가고 자식들이 외면한 가게는 고스란히 폐허로 남는다. 하지만 최근엔 전통시장을 발판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2세들이 늘고 있다. 단지 부모님의 기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더한다. 전통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2, 3세 청년경영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
▼ “신세대 겨냥 특별소스… 온라인 판로도 개척” ▼
금천대명시장 ‘뿌리깊은닭’ 배정광씨
6월 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대명여울빛거리시장의 ‘뿌리 깊은 닭’ 배정광 사장(왼쪽)과 아버지 배용규 씨가 자체 제조한 소스로 버무린 치킨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09년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유방암 판정에 아버지는 병간호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상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은 부모 대신 기꺼이 앞치마를 둘렀다.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58길(시흥동) 대명여울빛거리시장. 이곳에서 치킨전문점 ‘뿌리 깊은 닭’을 운영하는 배정광 사장(33)은 시장 유명인사다. 시장에서 닭을 팔던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인기 있는 치킨전문점으로까지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25년 동안 닭 유통업에 종사해온 아버지는 자신만의 숙성기술을 개발했지만 가게 앞에서 조금씩 튀겨 파는 정도였다. 배 사장은 “가게를 맡게 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한약재와 생과일 등 20여 가지 천연재료를 넣은 아버지의 숙성기술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치킨전문점을 열기로 하고 1년 동안 요리학원을 다니며 양념소스, 양파소스, 마늘간장소스, 닭강정소스 등 다양한 소스를 개발했다. 저온 숙성한 닭에 매콤달콤한 소스가 더해지면서 시간이 지나도 바삭한 맛을 유지하는 독특한 치킨이 탄생했다.
▼ “배달부터 시작… 아버지의 단골, 내겐 큰 재산” ▼
성남중앙시장 ‘충남상회’ 신재현씨
6월 26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제일로 성남중앙시장 내 ‘충남상회’에서 신재현 예비사장(오른쪽)과 어머니 차영자 씨가 싱싱한 채소를 소개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제일로(태평동) 성남중앙시장 내에서 ‘충남상회’라는 채소 도매상을 하고 있는 신재현 예비사장(32)은 3세 경영인이다. 충남 서천 출신의 할아버지가 60여 년 전 장사를 시작한 이후 아버지와 함께 가업을 잇고 있다.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이라며 사장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라고 거듭 부탁했다.
신 씨는 시장과 10분 거리에 있는 농장에서 직접 농사지은 싱싱한 채소를 시장에서 팔고, 가락시장에 납품도 한다. 고객에게 직접 배달도 해준다. 대형마트와의 경쟁 속에 전통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충남상회는 억대의 연매출을 올리는 대박가게로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하려면 품삯의 세 배는 벌어다 줘야 한다’며 엄격하게 교육했다”며 “처음에는 배달부터 시작해 차츰 각각의 채소 특징과 다루는 법을 익히면서 신임을 얻어갔다”고 말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서비스. 넉살 좋은 친화력은 시장 내에서도 알아준다. 지난달 26일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지나가는 시장 상인들과 고객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네기에 바빴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닦아둔 단골 고객들이 계속 가게를 찾을 수 있도록 정성껏 응대하고 있다”고 했다.
▼ “매년 성분 - 품질검사로 고객 신뢰 얻었죠” ▼
구리시장 ‘양평상회’ 이윤배씨
6월 26일 경기 구리시 안골로 구리시장 내 방앗간 ‘양평상회’에서 이윤배 사장(왼쪽)과 아버지 이왕희 씨가 직접 짠 참기름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기 구리시 안골로(수택동) 구리시장에서 만난 ‘양평상회’ 이윤배 사장(37)의 팔뚝이 예사롭지 않았다. 상인보단 운동선수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스포츠댄스 선수생활을 했단다.
아버지 이왕희 씨(69)는 1980년부터 구리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해 왔다. 가업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아들은 도통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와 삼촌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지만 ‘외도’가 길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스포츠댄스의 매력에 빠져 3년 동안 선수와 강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슬럼프에 빠져들면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가게 일을 시작했다. 이 사장은 “엄마랑 손잡고 기름을 사러 오던 소녀가 다시 엄마가 돼 방앗간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부모님의 뒤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마찰도 많았지만 조금씩 가게 운영을 바꿔 갔다. 냉장창고를 만들어 참깨, 들깨를 비축하면서 체계적으로 재고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힘이 많이 드는 낡은 기계를 자동 기계로 바꿨다.
이 사장은 “예전에는 기름을 많이 짜내고 고소한 맛을 내려고 참깨를 고온에서 장시간 볶았는데 이럴 경우 ‘벤조피렌’이란 발암물질이 나올 수도 있다”며 “이익이 줄더라도 덜 볶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매년 성분검사, 품질검사를 통해 고객들의 신뢰도 얻고 있다. 아버지 이 씨는 “처음에는 미덥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글·사진=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