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유임 이후] 서강학파 원로 김병주 교수의 쓴소리
김 교수는 이날 박 대통령의 대선 때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동아일보와의 추가 인터뷰에서 “비선(秘線)조직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고 비선은 어느 시대, 어느 정부나 존재했다. 문제의 핵심은 비선을 필요로 하는 심리, 벙커심리”라고 지적했다.
서강학파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경제 엘리트 관료들을 일컫는다. 이들이 대부분 서강대 출신이어서 서강학파로 불렸다. 박 대통령과 심정적으로 가까운 서강학파 원로의 비판이어서 울림이 더 컸다.
“주위에 적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상황인식, 그래서 신뢰할 수 있고 만만한 소수만이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 거칠어 보이는 낯선 사람들은 멀리하고 싶은 생각이 자신을 벙커 속으로 몰아넣는다.”
―모든 대통령은 ‘벙커심리’가 있지 않나.
“역대 대통령 모두 그런 심리가 다 있지만 박 대통령은 더 그런 것 같다. (아버지를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박 대통령을 핍박한) 전두환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래 교제했던 사람들만 믿을 수 있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국정을 맡으면 당차게 적진으로 뛰어들어서 적들도 만나야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야당의 거물 박순천 여사와도 대화하고, 당시 가장 존경받는 철학과 교수이면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학계의 거두 박종홍 서울대 교수를 설득해 함께 일했다. 이번에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을 결정했지만 더 멋지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벙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집권 2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공약 중 버릴 것, 차기 정부로 미루고 넘길 것을 챙겨야 한다. 예산 제약 상황을 모르면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또 창조경제라고 하지만 요즘 정부 기관들의 회의를 보면 주재자가 준비 자료를 낭독하고 참가자들이 일제히 필기하기 바쁘다. 서로 토론하고 그 장면을 홍보하라.”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서강대에 입학한 해인 1970년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박 대통령의 멘토였던 남덕우 전 국무총리에 이은 서강학파 2세대 대표 주자다. 김 교수는 “대선 전 학교 모임에서 박 대통령과 2, 3번 옆자리에 앉았을 때도 오늘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며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나이 많은 사람의 충언”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