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깨닫고 배운 경험과 공감능력 살려야 새 총리후보 임명해도 현재 국회 구도로는 인준투표 통과 어려워 총리 2기 시작하는 기분으로 피와 땀과 눈물 보여주라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을 비판하면서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구인난(求人難)을 하소연했다. 어떤 후보는 보유 부동산 목록이 너무 길었고, 어떤 법조인은 안대희 전 대법관 전철을 밟을까 봐 고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반성 없는 변명을 듣는 국민은 “넓은 천지에 총리감이 그렇게 없느냐”고 답답해한다. 이어지는 인사 참사에 보수층마저 “인사를 못해도 너무 못한다” “레임덕이 온 것 같다”고 탄식하는 판이다.
정치인 중에는 나서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통령이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이회창 전 총리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처럼 총리를 하면서 대통령의 꿈을 키울 사람은 절대로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권주자군에서는 비켜서 있지만 총리를 시켜주면 감지덕지 열심히 뛸 정치인도 많다. 김대중 대통령 때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총리, 노무현 대통령 때 고건 이해찬 한명숙 총리, 이명박 대통령 때 한승수 총리가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유족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민심의 바닥을 훑어본 정치인과 검사 출신 총리의 다른 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 총리도 잘나가는 검사 세계에서는 진주사범에 성균관대 법대 야간부를 나온 비주류였다. 경남 하동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12남매 중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겐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검사의 거들먹거림은 없다.
정 총리는 진도에서 호된 체험을 하며 많이 깨닫고 배웠을 것이다. 사표를 되돌려 받고 정 총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전남 진도였다. 정 총리는 9번째 진도 방문에서 현장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유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족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연극배우도 아닌데 눈물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던 총리가 다시 유임됐는데도 유족들은 거부하지 않았다.
현재 국회 구도로는 어떤 총리감을 내놓더라도 인준투표가 만만치 않다. 가까스로 과반(過半)을 채운 여당의 내부가 복잡하게 갈라져 있다. 7·30 미니 총선 후에도 이 구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총리감을 구해 험난한 검증과 인준투표를 거치더라도 지금 같은 정치 환경에서 정 총리 이상의 총리가 나올 법하지 않다. 그래서 정 총리가 큰 실착만 하지 않으면 장수 총리가 될 것이라는 추론(推論)이 힘을 받고 있다. 총리감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정 총리 하기에 따라서는 김황식 전 총리가 세웠던 기록(2년 5개월)을 갈아 치울 가능성도 있다.
정 총리는 사표를 돌려받은 후 2기 임기가 시작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새 총리를 구할 때까지 ‘땜빵 총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첫 총리 후보의 낙마 덕에 총리가 돼서 두 총리 후보의 연이은 낙마로 임기를 연장한 ‘낙마 덕 총리’ ‘실패한 총리’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은 꼭 책임총리가 아니더라도 국무총리실의 권능이 강해졌다. 국가안전처도 그 밑에 들어간다. 2기 임기를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 안전의 격을 높이고 피와 땀과 눈물로 세월호를 수습하는 총리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