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엄한 애’ 데려오면 어쩌죠.”
‘착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TV 주말극 ‘기분 좋은 날’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엄한’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애먼’이란 고유어를 잘못 알고 쓴 것이다. ‘애먼’은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엉뚱하게 느껴진다’는 순우리말이다. 물론 표제어로도 올라 있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란 순우리말 ‘애매하다’에서 나왔다. ‘애매하다’가 줄어 ‘앰하다’가 되고, 여기서 관형사 ‘애먼’이 나온 것이다.
듣다 보니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애매하다’가 ‘억울하다’는 뜻이라고? 한자어와 순우리말이 뜻은 다른데 발음이 같다 보니 오는 혼란이다.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다’란 한자어 ‘애매(曖昧)하다’와 ‘억울하다’는 순우리말 ‘애매하다’는 구별해서 써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며칠 전 독자 한 분이 명쾌한 해답을 줬다. 한자어 ‘애매하다’와 ‘애매모호하다’를 ‘모호하다’로 쓰면 헷갈릴 일이 없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흔히 쓰는 ‘엄한 사람 잡지 마라’ ‘엄한 짓 하지 마라’는 ‘애먼 사람 잡지 마라’ ‘애먼 짓 하지 마라’가 사전적으로는 바른 표현이다. 하지만 열에 아홉이 ‘엄한 사람’ ‘엄한 짓’을 바른 표현으로 알고 있는 ‘엄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원이 분명함에도 입말의 자리를 빼앗긴 ‘애먼’으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어쩌랴. 말의 시장에서 누굴 죽이고 살리느냐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언중뿐이다. 그러니 ‘엄하다’를 표준어로 대접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극 중 서재우와 정다정의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제발 ‘엄한 결말’로나 끝나지 말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