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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냉중성자 기술’에 유럽이 반했다

입력 | 2014-07-04 03:00:00

원자력硏, 연구용 원자로 네덜란드 수출 비결은…




‘원자력’이라고 하면 원자력발전소를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 연구용 원자로(연구로)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연구로에서 핵연료가 분열할 때 나오는 중성자를 활용하면 각종 소재를 분석하고 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성자의 에너지를 낮춘 냉중성자는 나노공학과 생명공학 등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냉중성자 설비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

○ 방사선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 달아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냉중성자 설비 기술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에 수출하기로 확정하면서 원자력 선진국인 유럽 진출에 처음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유명 원자력 업체를 제치고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김영기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기술개발단장은 “연구로를 운영한 오랜 경험과 냉중성자를 만드는 차별화된 기술에 네덜란드가 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이 ‘토종’ 연구로인 ‘하나로’를 완공한 건 1995년이다. 이후 2003년 냉중성자 설비를 만들어 하나로에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7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2011년 냉중성자 설비가 본격 가동되자 그 성능은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 3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델프트공대가 원하는 작업도 50년을 넘긴 노후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를 달아달라는 것. 기존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은 아예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방사선 노출을 막기 위해 연구로가 수조 안에 담겨 있어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고 로봇 팔을 달아 원격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는 환경에서 작업하려면 어디를 어떻게 막을지도 매우 중요한데, 이런 노하우는 원자력연구원처럼 직접 해본 곳에서만 갖고 있다.

○ 냉중성자 기술 차별화시킨 게 핵심

냉중성자를 만드는 기술이 경쟁 업체와 차별화된 점도 주효했다. 냉중성자를 생성시키려면 중성자를 영하 253도의 액체수소에 통과시켜 에너지를 낮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프랑스나 독일 러시아가 뭉친 경쟁 업체는 액체수소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순환하는 방식을 제시했는데, 이 과정에는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해서 위험하고 펌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지 및 관리가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자연대류 방식으로 냉중성자를 만드는 기술을 제시했다. 위쪽에 기체수소를 채우고 극저온의 헬륨 통을 통과시키면 무거운 액체수소로 바뀌면서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중성자는 아래에 담긴 액체수소를 만나 열을 뺏기면서 냉중성자가 되고, 이 열을 흡수한 액체수소는 자연스레 가벼운 기체로 바뀌어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수소가 기체, 액체로 순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대기압 수준에서도 가능해 안전하다.

김 단장은 “델프트공대가 처음에는 우리가 타 업체와 다른 기술을 제시하자 의아해하면서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면서 “세계 주요 냉중성자 설비에서 이 기술을 쓴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흔쾌히 우리 손을 들어준 것 같다”고 밝혔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의 연구로 기술이 유럽 문을 처음 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현재 세계 연구로 246기 가운데 30∼50기는 노후해 교체가 불가피하다. 신규 연구로 수요도 꾸준히 늘어 네덜란드만 해도 이르면 올해 하반기 4억∼5억 유로(약 5500억∼6900억 원) 규모의 대형 연구로 건설 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다.

김종경 원자력연구원장은 “기술경쟁에서는 자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의 ‘양(量)’ 경쟁에서는 외국 업체에 한참 뒤처졌다”면서 “전문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 냉중성자(冷中性子) ::

핵분열로 발생한 중성자의 에너지를 낮춘 것으로 X선보다도 에너지가 낮아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하거나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적합하다.

대전=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