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송평인]시즌2로 이어지는 홍명보 ‘의리 축구’

입력 | 2014-07-04 03:00:00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홍명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선수단의 맏형 홍명보의 말에는 뜻밖에 히딩크에 대한 반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히딩크가 비생산적 선후배 질서를 깼다는 평가에 대해 “원래부터 축구장에서 후배들은 종종 날 보고 ‘홍명보’ ‘홍명보’라고 불렀다. 그러나 축구장 밖에서는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이 원칙은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과 후에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 속으로 ‘이 사람은 선수는 해도 감독은 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히딩크는 단지 축구장에서 선후배 관계를 무시해도 좋다고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축구장 밖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홍명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축구장 밖에서는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라고만 후배들을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축구장 안에도 영향을 미쳤다. 축구장 안과 밖이 그렇게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 그 미묘함을 모르는 사람이 감독을 잘할 수 없다.

▷축구를 해본 사람은 축구장 안은 실력만이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2002년 국가대표팀의 막내 박지성이 했던 역할을 이번에는 막내 손흥민이 했어야 하는데 할 수 없었다. 히딩크가 가까스로 마련해 놓은 ‘실력 축구’의 토대가 홍명보의 ‘의리 축구’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홍명보가 벤치에 죽치고 있었던 박주영을 믿었다는 것 자체가 요행을 바란 것이다. 게다가 박주영은 후배들이 어떻게 해보기 어려운 그라운드 안의 맏형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의 감독 유임을 결정했다. 홍명보는 히딩크에게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홍명보는 히딩크가 이동국을 자르듯이 박주영을 내치지 못했다. 히딩크처럼 박지성 송종국 같은 실력 있는 선수를 발굴할 줄도 몰랐다. ‘모 아니면 도’인 경기에서 히딩크는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넣는 강단으로 역전했지만 홍명보는 감독의 존재감을 느낄 만한 전략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알제리가 러시아보다 강팀인지를 몰랐다. 그런 감독이 이끄는 ‘의리 축구’ 시즌 2를 내년 1월 아시안컵 대회까지 봐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