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벨기에전을 끝마친 후 16강행 좌절에 허탈해 중계를 잇지 못하고 침묵하는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 그는 통찰력 있는 분석과 예측으로 ‘초롱도사’ 등의 별명을 얻었다. KBS TV 화면 캡처
그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 위원의 일침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한국 시간) 벨기에전에서 패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일찌감치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는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그들의 선배인 이 위원은 날 선 일침을 가했습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예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한 누리꾼은 “누구 하나 이런 이야기해줘서 다행”이라며 이 위원의 이야기를 지지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영표만 능력을 증명했다”는 냉소 섞인 댓글도 보였습니다. “월드컵은 경험 쌓으러 나오는 무대가 아니고 최고의 성적을 거둬야 하는 대회”라며 이 위원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대표팀 골키퍼 김승규 선수의 인터뷰 영상도 덩달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위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불현듯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 개편 과정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달 지명된 국무총리 및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과거 교회 강연에서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한 내용 등이 논란이 돼 자진사퇴했습니다. 나라의 교육정책을 이끌어야 하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여전히 논문 표절, 제자 논문 실적 가로채기 등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후보자들이 ‘자격’을 제대로 증명하려고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인사검증 과정을 그저 ‘경험’하기 위해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해 봅니다.
내각 개편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와중에 마침표를 찍은 건 정홍원 총리 유임 조치였습니다. 일찍이 세월호 참사 초동 대응 및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정 총리를 대신해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인사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자 결국 유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검증이 반복돼 총리를 유임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대통령의 해명에도 SNS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많은 누리꾼이 코미디, 자충수 등을 거론하며 이 선택을 비판했습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려던 정부의 계획은 아랫돌을 뺐다가 허둥지둥하더니만 곧 다시 원래 자리로 괴어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번 균형이 무너진 돌 더미가 다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건만 말이죠.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