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며칠 전 출근 지하철에서 이 우작(愚作)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약한 수수께끼로 상대를 괴롭히는 악당 리들러(짐 캐리)가 고담 시민에게 대량 판매한 ‘생각 훔쳐보기 장치’. 사용자의 생각이 머리로부터 초록색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조악한 컴퓨터그래픽과 대조적으로, 기계 설정 아이디어는 흥미로웠다.
사용자는 이 기기를 장착한 TV를 통해 다른 모든 사용자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다. 남의 속내 훔쳐보기만큼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오락거리가 있을까. 온 가족이 오로지 기기 화면에 시선을 꽂은 채 눈이 시뻘게지도록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잠자코 앉아서 그 화면만 바라보면 모든 사람과 무한정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집어넣고 지하철역 플랫폼을 둘러본다. 십수 년 전 논산훈련소 기억이 살아난다. 똑같은 자세로 늘어선 사람들. 어깨 높이로 올린 한쪽 손에 비스듬히 쥔 스마트폰, 상박은 겨드랑이에 밀착, 시선은 하방 45도, 귀에는 이어폰. 그 좌우로 정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든다.
모든 사람을 24시간 온라인 상태로 전환시킨 소통의 도구 스마트폰은 오프라인 세상에서 매우 효과적인 ‘외면의 도구’다. 걸어가는 방향을 쳐다보지 못할 만큼 화급히 주고받아야 하는 카톡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앞을 살피며 걷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모바일 포털 뉴스는 과연 어떤 소식일까. 게임에 몰두한 채 우르르 돌진해오는 이들을 위태롭게 하나하나 피하다 보면 장애물넘기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최근 교통안전공단 조사에 따르면 서울 경기 지역 사고 다발 횡단보도 10곳의 보행자 중 25.1%가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서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을 보자. 걸을 때만이라도. 많은 부모가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해 아이의 두뇌 발달이 더뎌질까 걱정한다. 그보다는 몸의 안전을 위해 ‘고개 똑바로 들고 앞을 보며 걸으라’고 가르치는 게 먼저 아닐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하철 문 앞에서, 스마트폰 모서리로 앞사람 등 꾹꾹 누르는 당신. 지도 앱을 켜고 모르는 길 찾아 헤매는 중이 아니라면 걸을 때는 스마트폰을 내리자. 지구 위에 혼자 걷는 길은 없다. 길 위에 함께 오른 사람들은 스마트폰 게임 속 장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