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1982∼ )
여기 망치가 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든
망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지만
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둔기의 윤리
괜찮소 누구나 귀머거리가 되니까 누구든 벙어리
가 되니까 언젠가 숨 쉬지 않는 자가 될 테니
없는 눈을 감은 채
망치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힘껏 내리친다
그의 사랑은 어차피 한 가지 방식뿐이니까
장미꽃을 두드려 겨울을, 태양을 두들겨 밤을,
도시를 내리쳐 무덤을 만드는
둔기의 본분
“어떻게 한 숨결에서 뜨거운 숨과 찬 숨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거냐!”(엘러리 퀸 장편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그것이 망치다. ‘함부로 뭉개진 얼굴/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망치. 감정이 없으니 표정이 있을 리 없는 얼굴로 옹골차게 목표물을 가격할 따름. 그런 냉혹함과 완강함, 망치의 ‘윤리’와 ‘본분’으로 인류 문명이 이루어졌을 테다. 시인은 사물 망치를 빌려 인간을 말한다. 용도에 따라 이기(利器)도 되고 흉기도 되는 망치. 건설도 하고 파괴도 하는 인간 망치!
못 하나 박을 때도 망치를 잘못 휘두르면 다친다. 제대로 망치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망치와 호흡을 맞춰 한 지점을 향해 정확하고 강하게 힘을 날리는, 기하학을 아우르는 그 감각! 망치를 들어 올려 내리치기까지의 부드럽고 힘찬 율동, 그리고 일격, 일격의 리드미컬한 망치 소리! ‘여기 망치가 있다’ 어떻게 쓸 것인가!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