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의 베테랑 상담원 조수진 씨는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학생들의 고민을 크게 보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12년 전에 부경대에 처음 왔을 때랑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남녀 간의 차이도 없구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에 비교한다면 의외인 것 같지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요."
조 상담원은 학생들의 고민을 '굳이' 내용별로 나눠보면 성격에 대한 상담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생상담 센터를 찾은 학생은 5920명(전체 재학생 2만5000명) 중 3071명이 '자기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싶다'고 호소했다는 것. 그는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성격 탓으로 돌리며 자기 비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 부분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성이나 연애에 대한 상담도 많다. 이밖에 가족관계, 가치와 종교, 사이버중독, 불안, 편집, 학교적응, 발표불안 등 모든 분야를 상담하고 있다. 그는 "통상 상담이라는 게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칼로 자르듯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조 상담원은 동아대학교에서 교육학박사(상담심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부경대에 온 이후 12년 동안 5000명 정도를 상담했다. 그는 올해 5월 스승의 날엔 꽃바구니 하나를 선물 받았다. '나를 바꾼 스승의 한마디'라는 교내 공모 이벤트에 당선한 학생이 보낸 꽃바구니였다. 그 학생은 "'선생님은 네가 잘 할 거라고 믿는다'는 조 상담원의 말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벤트에 응모했던 것.
그의 상담에 대한 견해. "상담이란 게 내담자(來談者)의 인생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내담자에 공감은 해주지만 감정에 같이 휩쓸려 들어가면 안 된다. 버티기를 잘 할 수 있어야 상담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까지 3,4번 정도 내담자와 함께 펑펑 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 운다는 것은 내담자가 '나를 동정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며 "다행히 내담자와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풀렸다"고 말했다.
조 상담원은 2010년 봄 천안함 폭침 사건 무렵을 어려웠던 시기로 꼽았다. "당시 천안함 사건에 연예인이 자살하는 등 사회 분위기가 우울했다. 또 날씨까지 좋지 않았다. '우울하다' '자살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상담이 폭주했다. 일부는 '늘 죽고 싶은 나는 죽지도 못하고 멀쩡한 젊은이들만 죽었다'며 자책하는 경우를 달래느라 굉장히 어려웠다." 올해는 세월호 사건이 터져 상담실이 바짝 긴장했으나 생각보다 상담실에 미치는 여파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해 선배 상담전문가들의 경험과 식견을 배우거나 집단 교육에도 참가해 실력을 키워 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롤 모델로 성신여대 김정규 교수를 꼽았다. "김 교수님은 핵심에 빨리 도달하고 빨리 방법을 찾아낸다.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상담을 하는 것 같은 데 결과적으로 각자에 꼭 맞는 상담방법을 보여줬다.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상담전문가로 인정받는 그이지만 석사과정 때 '상담을 그만둘까'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상담이란 내담자의 신발을 신고 반보 뒤에 쫓아가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다는 것. '공감이 뭔지'를 알 수 없어 무력감을 느꼈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교수님의 말이 정답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독립적일까요, 적게 받은 사람이 독립적일까요'라는 퀴즈를 기자에게 냈다. 그리고는 이내 정답을 밝혔다.
부산=윤양섭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