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사 티켓 샀는데 佛비행기가… 당황하셨어요?
대기업에 다니는 A 부장이 갑작스러운 비즈니스미팅으로 꼭 월요일에 카자흐스탄으로 가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자니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쌓지 못하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A 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코드셰어(code share)’ 덕분이다. 코드셰어란 두 항공사가 서로 상대 항공편의 일부 또는 전체 좌석을 대신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항공편 좌석 공유제다. A 부장은 월요일 오후 1시 인천을 출발하는 에어아스타나 KC-909편을 타면 된다.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지 않는 목요일과 토요일에도 원한다면 에어아스타나를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에어아스타나 홈페이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예약도 아시아나항공에서 하고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도 당연히 쌓인다.
대세로 자리 잡은 코드셰어
코드셰어의 역사는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서양을 오가던 북미 항공사들과 유럽 항공사들이 자사 취항 노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좌석 좀 줄게, 너희 좌석 좀 다오”라며 손을 맞잡고부터다.
국내 항공사가 코드셰어 대열에 합류한 것은 1993년. 대한항공이 운항하고 있던 서울∼스위스 취리히∼이탈리아 로마 구간에 알리탈리아항공이 일부 좌석을 대신 판매하기 시작한 게 첫 사례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듬해 미국 노스웨스트항공과 첫 코드셰어를 맺었다.
항공사들은 왜 코드셰어를 선호하는 것일까.
우선 개별 항공사가 취항할 수 있는 노선에 한계가 있다는 게 첫째 이유다. 주요 도시까지는 항공편을 운항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국내선까지 직접 챙길 수는 없는 노릇. 2012년 대한항공이 케냐 나이로비까지만 항공기를 띄우고, 아프리카 대륙 내 다른 노선은 케냐항공의 좌석을 활용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나항공은 마카오에 대한 국내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인천∼마카오 노선을 신규 취항하는 대신 에어마카오와 코드셰어를 맺어 고객을 유치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 지방 관광객들을 잡기 위해 에어부산의 부산발 국제선 4개(후쿠오카, 나리타, 오사카, 칭다오)의 좌석을 공동 판매하고 있다.
둘째는 A 부장 같은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마음 같아서야 모든 해외노선을 매일 한 차례 이상 운항하면 좋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아스타나와의 코드셰어를 통해 주 2회만 운항하면서 주 5회 운항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세계 각지를 잇는 넓은 네트워크와 편리한 스케줄”이라며 “코드셰어는 곧 네트워크 확대와 스케줄 다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많은 고객들은 여전히 코드셰어를 잘 알지 못한다. 파리에 가려고 대한항공 티켓을 산 고객이 막상 탑승게이트에 도착하고 보니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대기하고 있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기내식에 비빔밥이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울화가 치밀 수도 있다.
사실 고객 입장에선 타당한 불만이다. 같은 돈을 주고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받는다는 게 내키는 일은 아니다. 각 항공사가 코드셰어 좌석을 판매할 때 의무적으로 운항편명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고객이 많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전에는 예약한 항공사와 다르다고 아예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있었다”며 “국적기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충성도가 워낙 커 아직도 종종 불만이 나오곤 한다”고 전했다.
코드셰어에는 실제 항공기를 운항하는 운항사와 일부 좌석을 빌리는 판매사가 있다. 양사 간 협정이기 때문에 계약 내용이 천차만별이지만 매출액은 대개 판매사 쪽으로 잡힌다. 항공료도 일반적으로 판매사가 정한다.
이 때문에 코드셰어를 활용해 값싸게 항공권을 구입하는 알뜰족이 최근 알음알음 생겨나고 있다.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를 가려면 방법은 대략 이렇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경우 대개 국적기인 대한항공의 항공료가 에어프랑스보다 비싸다. 그러나 파리 출발편이라면 그 나라 국적기인 에어프랑스보다 대한항공 항공료가 더 싼 게 일반적이다. 알뜰족은 이 점을 노린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에어프랑스를 통해 항공권을 사되 대한항공의 항공기가 뜨는 스케줄로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싼값에 대한항공을 타고 갈 수 있다. 파리에서 올 때는 반대다. 에어프랑스만 있는 시간대일 경우 외항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항공권을 구입하면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 물론 왕복이 아닌 편도 항공권을 살 때만 해당되는 얘기다.
항공사들로서는 이런 알뜰족의 출현을 반길 리 없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코드셰어가 크게 늘어나면서 싼 외항사 요금으로 국적기를 타려는 고객이 꽤 생기고 있다”며 “여행사로선 이런 부분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항공사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드러내놓고 하진 못한다”고 귀띔했다.
항공업계의 끝없는 진화
A 부장은 출장이 한 달만 빨랐더라도 코드셰어를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드셰어의 방식은 세 가지다. 계약된 숫자 내에서만 상대 항공편의 좌석을 판매할 수 있는 ‘블록시트(block seat)’, 같은 수의 좌석을 정산 없이 서로 맞바꾸는 ‘시트스와프(seat swap)’, 그리고 좌석 제한 없이 상대 항공편 좌석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프리세일(free sale)’이 그것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아스타나는 지난달까지 블록시트 방식의 코드셰어를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항공편마다 비즈니스 3석과 일반석 30석 등 33석만 상호 판매했다. A 부장이 항공권을 구하기 전에 아시아나항공에 배정된 33석은 일찌감치 매진됐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아스타나는 1일부터 코드셰어를 프리세일 방식으로 전환했다. 아시아나항공의 OZ-577, OZ-588편은 비즈니스 30석, 이코노미 260석 등 290석, 에어아스타나의 KC-909, KC-910편은 비즈니스 30석, 이코노미 193석 등 223석이다. 지난달까지 아시아나항공은 매주 편도 기준으로 자사 항공기 580석(290×주 2회)과 에어아스타나 99석(33×주 3회) 등 679석을 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달부터는 에어아스타나의 669석(223×주 3회) 모두 판매가 가능해 팔 수 있는 좌석이 2배 가까운 1249석(580석+669석)으로 늘었다. 그 덕분에 급히 출장길에 오른 A 부장은 무사히 코드셰어로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코드셰어는 블록시트나 시트스와프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프리세일로 옮아가고 있다. 그만큼 항공사 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사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 양사 간 승무원을 맞교환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2007년 각각 중국난팡항공, 전일본공수와 승무원을 맞교환하는 서비스를 시행한 바 있다. 코드셰어를 통해 다른 항공편을 탄 자사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코드셰어를 선도했던 북미 및 유럽 항공사들은 최근 아예 특정 노선을 운항하기 위한 합작법인(JV)까지 만들고 있다. 2009년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가 대서양 노선을 위한 JV를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항공사들도 적극적이다. 전일본공수는 유나이티드항공과, 일본항공은 아메리칸항공과 각각 JV를 세워 적극적인 협력에 나섰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 중에는 아직 타 항공사와 JV를 만든 곳은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항공노선도 거미줄처럼 복잡해지고 있다”며 “독자적인 능력으로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를 느낀 항공사들이 점차 코드셰어, JV 설립 등 네트워크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