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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치기 힘든 中 ‘反日공조’ 압박… 한국 등거리외교 험난

입력 | 2014-07-05 03:00:00

[시진핑 국빈 방한/日우경화 한목소리 비판]
시진핑 끈질기게 日비판 동참 요구… ‘中과 밀착’ 오해 차단할 노력 시급




한중 정상회담 뒤 국빈 만찬이 끝난 3일 오후 11시경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을 찾았다. 기자들의 관심은 중국중앙(CC)TV 보도에 쏠려 있었다. CCTV가 정상회담 직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식민지 해방 70년을 맞는 내년을 양국이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말했다”며 공동선언이나 정상회담에서 드러나지 않은 다른 기류를 전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본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상태였다.

민 대변인은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에 확인한 직후 “(양 정상 간) 일본 역사 인식과 관련한 문제는 다뤄졌지만 구체적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4일 오후 5시경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CCTV 보도가 사실이라고 했다. 18시간 만에 말을 바꾼 셈. 전날 확인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주 수석은 “어제 시 주석이 잠깐 얘기했고, 우리가 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 하루 만에 달라진 청와대

전날 정상회담에서 일본 문제는 주요 의제가 아닌 듯했다.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에선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도 찾을 수 없었다.

3일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와 중국이 비슷하지만 (대응에 있어) 중국과 같이 갈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한미일 공조 역시 중요한 상황에서 중국 쪽에 쏠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 중국이 일본 문제와 관련한 한중 공조 요구를,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로 못 박자는 요구를 서로 양보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4일 시 주석의 방한 일정이 끝나갈 무렵 기류가 달라졌다. 양 정상은 일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며 △고노담화 검증 △독자적 대북 제재 해제 등 최근 일본 행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고 전했다. 특히 양 정상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대를 우려했다고 밝힌 점은 눈에 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이 공식 지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대 자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 중국 측의 압박으로 분위기 반전?

분위기 반전은 중국 측의 강한 요청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시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임진왜란까지 거론하고 “이익보다 의(義)를 더 중시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연설을 상기시킬 정도로 일본 문제에 집중한 것도 한국 측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정부의 입장 변경이 급작스레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2시경 YTN에 출연해 “일본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한중 정상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겠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놓고 공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의 활동 공간을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주 수석 브리핑 3시간 전의 일. 조 차관으로서는 청와대의 기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적인 외교 관행을 설명한 셈이다. 조 차관은 정상회담 공식 멤버도 아니고 공식행사에 참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종전 70주년 공동행사 개최 제안을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이 모여 제3국인 일본에 대해 직접 공격하는 것은 국제관례에 맞지 않는 외교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판단은 달랐다. 시 주석의 방한이 끝나갈 무렵 주 수석은 한중 정상이 나눈 일본 관련 대화를 소상하게 공개했다.

미일과 중국 사이 ‘샌드위치’ 신세

한중 정상회담으로 두 정상의 친밀감은 높였지만 한국 외교에는 큰 숙제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주요 2개국(G2)으로 미국과 대등한 신형대국관계를 형성하려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안보부처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아무리 싫어도 일본은 전략적으로 끌어안고 가야 할 파트너이자 한미동맹의 동반자”라며 “일본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중국과 손잡고 발표하는 방식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이 대륙(중국) 쪽에 가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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