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
《 한국인의 삶은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가 사뭇 달랐다.
1930년대 태어난 세대는 격변의 시대를, 혹독한 현실을 온몸으로 돌파해야 했고, 386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과하면서 중산층의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의 첫머리는 두 세대가 공유하는 집단적 특징을 개인의 서사에 초점을 두고 펼쳐낸다.
1933년생 서울 토박이였던 실존인물과 1960년대생 농촌 출신 가상인물을 앞세워 그들이 성장기에 읽고 접했을 법한 이미지와 책을 제시한 ‘모더니티의 평행우주’ 섹션이다.
이어 2층에 자리한 ‘인간의 생산’ 섹션은 근현대 우리의 교육이 어떤 인간과 사회를 지향했는지를 되돌아보고, ‘이상한 거울들’ 섹션은 과거의 자료를 사운드 영상 설치물 형태로 재해석했다. 》
일민미술관의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은 인문학박물관의 소장품을 미술관 전시로 번역한 색다른 전시다. 1950년대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 주변 풍경을 담은 앨범을 비롯해 과거의 다양한 기록물을 지금 여기로 불러내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다. 일민미술관 제공
가까운 과거의 낯선 얼굴에서 오늘의 우리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박물관을 미술관으로 불러온 발상의 새로움, 자료 중심 전시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 세 기획자의 공력이 돋보인다. 9월 21일까지. 02-2020-2050
전시에 나온 한 여성지의 광고지면.
여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교서부터 ‘한국소설의 가능성’에 대한 평론가 김현의 글까지 1960∼80년대의 풍경을 20개의 짧은 텍스트로 소개한 코너도 있다. 박물관에서 미술관으로 옮겨온 유물이 우리가 거쳐 온 ‘책의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 이야기로… 광고-녹음물에 얽힌 사연
책과 더불어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34년 동아일보 부록으로 발행된 세계지도, 금성사 가전제품 광고, ‘한열이를 살려내라!’ 판화 등 눈길 끄는 이미지가 많다. ‘열다섯 개의 목소리’ 코너에선 백남준, 최초의 트랜스젠더, 사채업계의 큰손 등 15명의 인터뷰를 녹음해 들려준다. 잊혀진 개인의 사연을 담은 ‘네 사람의 목소리’와 합창으로 들려주는 ‘저축의 노래’ ‘새마을노래’ 등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기존 자료를 재배치해 근현대사를 재조명한 이번 전시는 과거를 되짚으며 인문학박물관이 탐색했던 명제를 다시 호명한다. ‘사람의 마지막 연구는 사람이다.’(1914년 ‘청춘’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