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미지 벗겨낸 문창극 사태… 청와대, 코피 안 흘리려다 뇌진탕 ‘레토릭 리더십’은 이미 저물었다 각론 과제들 實效的 해결 없이는 국가 개조야말로 가당찮은 일 정권이 인적 장벽 해체 감수 않으면 누가 기꺼이 대신 희생하겠는가
배인준 주필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다음 날, KBS는 문 씨의 교회 강연 중 일부만 짜깁기해 그가 식민사관을 지닌 반민족 친일분자인 듯이 몰아갔다. 이 보도를 계기로 문 후보에게는 친일의 낙인이 찍혔고, 이에 여론이 악화되자 여당에 이어 대통령까지 그를 유기(遺棄)한 결과가 총리 사산(死産)이다.
김 실장은 “많은 후보의 사사로운 발언이나 강연 같은 것을 다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는데 나는 수긍한다. 완벽한 검증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문 씨의 강연에 대해 미리 다 파악했더라도 총리 결격사유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 내용을 총리 결격으로 본다면 비유컨대 로마 교황도 한국 총리는 될 수 없으리라.
문 씨의 강연과 많은 칼럼을 보면 반민족 친일의식이 아니라 한민족 우월의식이 오히려 강하게 배어 있다. 문 씨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손잡은 적이 있거나 대한민국을 부정(否定)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극우(極右)로 보일 수도 있는 강고(强固)한 대한민국 정통성 신봉자이다. 이런 사람이 친일 매국노인 양 여론재판 정치재판에 몰리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눈을 왼쪽으로 굴렸다 오른쪽으로 굴렸다 하느라 여론을 바로잡는 데 실기(失機)했다.
‘나는 권력온실 안에 있고 너는 밖에 있으니, 밖에 있는 너는 죽더라도 안에 있는 나는 살아야겠다’는 기득권 보신주의가 청와대를 휘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고 있던 상황에서 ‘진실은 이것’이라고 외치고 나오는 청와대 사람은 없었다. 문창극 사태는 검증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 관련자들의 직무 소명감 실종, 안일과 나태, 집단 책임 회피, 위기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무능, 기회주의와 비겁함 등이 자초한 인사 패배였다고 나는 본다. 코피를 흘리지 않으려다 뇌진탕을 일으킨 격이다.
지명권자이자 최종 인사책임자인 대통령부터 인사를 성공으로 이끌 용기와 자기희생의 마음가짐이 없음을 노출했다. 자신이 선택한 총리 후보에 대한 법에 따른 청문 절차조차 오도된 여론에 영합해 포기했으니 인재를 아끼는 대통령으로 비치기 어렵다.
그제 김 실장은 인사의 고충을 설명하면서 “나름대로 적임자를 추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때론 청문회가 부담스럽다고, 때론 가족이 반대해서 당사자들이 고사하고 있어 적임자 인선에 애로가 있다”고 토로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자신이 최종 낙점한 총리 후보까지 반이성 비논리적으로 박정하게 버리는 대통령을 보면서 ‘고락을 함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인재들이 줄을 설까.
국가 개조도 각론의 인사 성공, 이미 던져져 있는 숱한 국정 과제들의 구체적 실효적 해결 없이는 가당찮은 일이다. 정권 스스로 실패의 내부요인을 수술·개조하지 않고는 국가 개조의 동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정권이 자유민주 법치를 지켜내기 위한 고통을 회피하고, 인적 장벽에 갇혀 ‘자기해체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꺼이 대신 희생하는 개조의 대상이 되려 하겠는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