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不問… 필요하면 멘토 붙여준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창업지원센터 ‘피코’의 입주 기업인 ‘브리조미터’ 최고마케팅책임자 지브 라우트만 씨(왼쪽)가 창업 아이디어와 창업 환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중호 김난진 채승훈 씨. 예루살렘=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지난달 2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승객들로 가득했다.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유대교 성지로 잘 알려진 예루살렘. 사막에 지어진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 이스라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가 ‘테러’ ‘분쟁’. 하지만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어디에도 분쟁이나 테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정열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한국만큼 붐비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이스라엘은 아주 평온했다.
첫날의 설렘과 피곤함을 뒤로하고 세 사람이 처음으로 간 곳은 ‘이스라엘의 창업학교’라 불리는 ‘피코’. 지난해 이곳에 입주한 지브 라우트만 씨는 대기 오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브리조미터(BreezoMeter)’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다. 이 회사는 나라별 지역별 주변 대기오염을 표시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별 솔루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미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을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피코에 입주한 초기 창업자들이 칸막이 없는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를 거는 정보기술(IT) 창업가들이 대부분이며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멘토 역할을 해준다.
입주에 필요한 틀에 얽매이거나 절차가 복잡하지도 않다. 창업자의 나이나 경력, 회사의 규모도 따지지 않는다. 단지 아이디어가 얼마나 톡톡 튀고 실현 가능한지가 중요하다. 40, 50대 창업자들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언제든지 지원받을 수 있다. 20, 30대의 초기 창업자 위주로 별도의 사무공간이 주어지는 우리나라의 창업 인큐베이터 환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자문이 필요하면 멘토가 상담을 해주고 투자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는 최대 15만 달러까지 필요한 자금도 이끌어 준다. 외부 전문가의 강의도 수시로 이뤄진다.
피코 책임자인 하산 씨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유로움 속에서 창의력은 오히려 극대화된다. 창조 생태계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60km 떨어진 지중해의 도시 텔아비브.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경제수도다. 음악가나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살아 생각 자체가 개방적이다. 일행이 찾은 곳은 남쪽 산업지구에 있는 창업지원센터 ‘정크션’. 이곳은 벤처캐피털이 설립한 전 세계 유일한 비영리 창업지원기관이다. 3개월마다 20개의 기업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보통 8 대 1 정도. 아이디어보다는 창업가의 경험이나 실패 경험, 주변 환경 등을 주로 본다는 점이 피코와 차별화된다. ‘1인 기업’보다는 2, 3명이 함께하는 기업을 더 선호한다는 점도 다르다. 기업의 구성원 간 소통이 잘되면 아무리 나쁜 아이디어도 충분히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입주한 창업기업 간 협업을 통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실패한 창업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3개월에 한 번꼴로 60여 명의 투자자를 불러 기업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입주기업의 평균 34%가 이들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낸다.
예루살렘=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