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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웃자 사람이 운다… 딜레마에 빠진 ‘보석 골목’

입력 | 2014-07-09 03:00:00

서울 이태원 ‘장진우 골목’ 명암




4일 저녁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가길(일명 ‘장진우 골목’)을 찾은 젊은이들이 골목을 걸어가고 있다. 골목엔 200여 명의 어린이가 다니는 50년 역사의 유치원이 있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가길(이태원2동)은 사진가 장진우 씨(28)의 이름을 딴 ‘장진우 골목’으로 유명하다. 이 골목에 살던 장 씨는 2011년경 이곳에 테이블 하나짜리 레스토랑인 ‘장진우 식당’을 열었다. 이후 공연과 식사를 함께 즐기는 고성(古城)풍의 ‘그랑블루’, 제주도 요리를 파는 ‘문오리’, 조선 개화기 모던 식당을 재현한 ‘경성스테이크’와 같은 독특한 가게들이 이곳에 줄지어 들어섰다. 장 씨와 뜻을 같이하는 주인들은 골목을 ‘보석길’이라 부르며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모두 19곳. 이 중 8곳은 장 씨가 직접 운영한다.

지난주 금요일인 4일 저녁 장진우 골목은 20, 30대 젊은이들로 붐볐다. 입소문을 탄 인기 식당 앞은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골목에 주차장이 없어 방문객과 주민 사이에 주차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11시 반경 술집 안은 여전히 손님들로 붐볐다. 회사원 강모 씨(29·여)는 “장 씨가 독특한 콘셉트로 만든 골목이 맛과 멋으로 유명해 찾았다. 작은 가게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니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원래 골목은 빈 가게들이 군데군데 있었던 한적한 주택가였다. 대부분이 세입자로 주민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이다. 하지만 ‘장진우 골목’이 형성된 뒤 세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골목과 인근 부동산의 매매가가 2, 3년 새 30% 이상 오르면서 전세금과 월세도 따라 올랐다. 이곳 H부동산 대표는 “외식업으로 성공한 연예인들도 가게를 얻으려고 찾아올 정도”라며 “골목가 주택은 물론이고 후미진 골목에도 상가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거나 공사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기존 세입자들은 ‘월세 폭탄’을 맞게 됐다. 골목길에 자리한 한 가게 주인은 보증금 1000만 원을 5000만 원으로, 월세를 1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올려 달라는 집주인 때문에 근심에 빠졌다. 자녀와 함께 전세금 8000만 원짜리 집에 살던 김모 할머니(84)는 집주인이 월세 150만 원을 요구하자 이사를 가야 할 형편이다. 김 할머니는 “이사 갈 집이 예전보다 고지대인데도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라 전세로 치면 1억 원이 넘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임대료가 오르면서 이용원 쌀집 세탁소 안경원 등 주민들이 애용하던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10년째 이 골목에서 살고 있는 A 씨(55·여)는 “식당이 들어선 뒤 밤마다 시끄러워 잠도 자기 어렵고 단골 가게도 문을 닫아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장진우 골목’은 바람직한 도시 개발과 주민의 ‘공존’이란 화두를 던진다. 장 씨는 “건물주는 건물 가격이 몇 배 올라 좋지만 건물주보다 더 많은 주민들은 우리가 싫고 미울 것이다”라며 “이 골목은 대기업 자본이 아닌 가난한 예술가가 자기 능력을 발휘해 만든 공간이고 나 또한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주민이기 때문에 항상 공존을 고민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기존 골목과 이질적인 소비문화는 새로운 갈등도 낳았다. 지역 주민 정모 씨(38·여)는 “불법주차와 소음으로 민원을 넣으면 마치 ‘문화’를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해 불쾌했다. 겉으로는 문화를 만든다고 하면서 골목 주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장 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비틀스나 마이클 잭슨이 살아 돌아와 공연을 해도 그들(민원 넣는 주민)에게는 소음이다”는 글을 올려 반감을 더 키웠다.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골목은 원래 작은 공동체의 통로이자 공동 거실 같은 공간”이라며 “골목을 많은 방문자가 모이는 상업용도로 개발하면 주민들의 거주 여건이 나빠져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골목 개발 과정에서 상인, 세입자, 소유자, 전문가, 행정기관이 참가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민재 인턴기자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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