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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전문기자의 안보포커스]관심병사 문제, 언제까지 군에만 맡겨둘 것인가

입력 | 2014-07-09 03:00:00


윤상호 전문기자

“군만 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합니다.”

동부전선 일반전방소초(GOP) 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A 대위는 통화 내내 한숨과 탄식을 쏟아냈다. 강원 고성군 GOP 총기난사사건 이후 군에 대한 원성과 비난이 자신을 향하는 것 같아 가슴이 꽉 막힌다고 했다. 부대 지휘하랴, 관심병사 보살피랴 하루를 48시간처럼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는데 허사가 돼 버린 것 같다며 억울한 심경도 내비쳤다.

그는 “군이 욕먹고 비판받을 부분도 있지만 모든 책임을 군에 돌려선 제2, 제3의 병영참극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군 당국이 더는 쉬쉬하지 말고 관심병사 문제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영 내 관심병사 문제는 이미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 군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군내 관심병사 실태는 충격적이다. 군 전체 관심병사 비율은 최대 10%에 이르고 A급(특별관리대상), B급(중점관리대상) 관심병사도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22사단도 A, B급 800여 명을 포함해 관심병사가 1800여 명이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지휘관들은 강군(强軍) 육성은 고사하고 자나 깨나 ‘관심병사 조심’, 사건사고 예방에 온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훈련을 잘하고, 경계임무에 완벽을 기해도 병영사건이 터지면 진급 등 인사 경력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갈수록 군에 ‘야전형 지휘관’이 줄고, ‘관리형 지휘관’이 늘어난다는 지적을 흘려듣기 힘든 대목이다.

강원 최전방 사단의 한 지휘관은 “바깥에선 ‘관심병사를 전역시키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현 병력 규모로도 책임 지역을 지키기가 빠듯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병력감축의 부작용 등 군과 병영이 처한 심각한 현실을 국민과 사회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얘기였다.

관심병사를 걸러내기 위한 징병검사제도 등 사전 대책도 크게 미흡하다. 현재 전국 각 지방병무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상심리사는 27명에 불과하다. 지난 한 해 이들은 1차 인성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온 5만4450여 명을 상담했다. 1인당 하루 10명꼴로 연 2000여 명을 검사했다는 의미다. 검사 시간도 1인당 20여 분에 그쳐 실효성이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군내 심리상담사 실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5년 경기 연천군 GOP 총기난사사건 이후 도입된 심리상담사는 현재 2000∼3000명 규모의 연대당 한 명꼴로 배치돼 있다. 그나마 지난해까지 1개 사단에 1명씩 운영되다가 올해부터 늘어난 게 이 정도다. 군에선 심리학이나 정신과를 전공한 전문인력을 원하지만 보수가 적고 오지 근무가 많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예비역들이 주류를 이룬다.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심리상담사는 관심병사들의 상담 과정에서 군대가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울임을 절감한다고 토로했다. 관심병사 가운데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붕괴와 소득 양극화로 초래된 가정불화나 파탄을 경험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조적 황폐화로 어린 시절부터 좌절감과 분노를 경험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치유하지 않고 군에 들여보내는 것은 기름통을 안고 불에 뛰어들도록 하는 격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젊은 세대의 인성 파괴를 비롯해 극단적 범죄와 자살률 증가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영향권에서 군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최근 인격존중의 병영문화 조성, 관심병사 관리체계 개선, 초급간부 리더십 향상 등 사건 후속 대책을 발표했지만 ‘재탕삼탕’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많다. 장병의 정신건강과 인성문제는 부대 사기는 물론이고 전투력 발휘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군이 관심병사를 제대로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민군 심리상담센터 등 제도적 장치를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본다. 그래야 군이 바로 설 수 있다. 관심병사 문제는 군에 ‘뜨거운 감자’다. 언제까지 군이 ‘뜨거운 감자’를 들고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을 지켜볼 것인가.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