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에 참담함을 안겨준 팀 중 하나인 벨기에를 통해서 한국 축구의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28년 만에 8강 진출을 이뤄낸 벨기에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홍명보호와 비슷한 처지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벨기에 축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그들은 황금세대로 불리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이룬 4강의 영광을 재현시켜 줄 주역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2년 뒤 이들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월드컵은 20대 전후의 선수들이 나서는 청소년대회나 올림픽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대회다. 2008년의 벨기에, 1990년대의 포르투갈처럼 황금세대가 나타났다고 당장 정복할 수 없는, 임계점이 훨씬 높은 대회다. 물이 기체로 바뀌는 100도의 임계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열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올림픽 때보다 더 많은 땀과 투지와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대회 개막 전까지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의 생각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 대회 부진에 대해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은 모두 “대회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임계점 차이를 너무 작게 본 착각에 대한 뒤늦은 후회였다.
이런 부분에서 홍명보호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마땅하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많은 질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일부 인터넷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억측을 근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비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홍 감독이 월드컵 개막 전 땅을 구입하면서 대회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그중 하나다. 이런 논리라면 월드컵 개막 전 애인과 화보 촬영을 한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조별리그 탈락에 대한 사죄문 발표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은 늦었지만 월드컵 임계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했다. 다음 월드컵 때까지 임계점 돌파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졌다. 벨기에 황금세대가 그랬듯이 지금 흘리는 눈물은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 동안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비판은 하되 비난은 좀 참자.
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