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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지구를 스캔한다는 생각이 아이디어 원천”

입력 | 2014-07-10 03:00:00

[인터뷰]‘왕뚜껑’ 이어 ‘의리 식혜’ 광고 연속 히트 권덕형 코마코 디렉터
식혜와 김보성 무슨 연관이?…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2013년 베가 아이언 패러디 왕뚜껑 광고, 올해 비락식혜 의리 광고를 연달아 히트시킨 권덕형 코마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997년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입문한 뒤 애드벤처(현 JW애드벤처), 에이블리, MBC 애드컴 등을 거쳐 현재 코마코에서 일하고 있다. 포스코의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GS칼텍스의 ‘착한 기름 이야기’ 등 캠페인에 참여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뜬금없는’ 광고 하나가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수십 년간 똑같은 검은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며 “의리!”를 외치던 배우 김보성이 자신의 이미지와 쉽게 연결되지도 않는 비락식혜 광고에 등장했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하나. “우리 몸에 대한 의리”로 다른 음료 대신 몸에 좋은 전통 음료 식혜를 마셔야 한다는 것. 광고 내내 ‘의리’의 김보성식 발음 ‘으리’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넘쳐난다. “전통의 맛이 담긴 항아으리” “으리집 으리 음료” 등이 아예 자막으로 등장한다. 광고는 큰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가능한 모든 단어에 ‘으리’를 넣어 재구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티브(creative)라는 단어는 ‘크으리에이티브’로 표기하는 식이다. 단지 광고만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이 광고가 나간 후 비락식혜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5월 7일 광고를 처음 공개한 후 같은 달 31일까지 총 540만 개 이상의 제품이 판매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이상 신장한 수치다. 이 광고는 대기업 계열 거대 광고기획사가 아닌 코마코(KOMAKO)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기획·제작했다. 지난해 ‘베가 아이언’ 패러디 광고 ‘왕뚜껑 광고’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2년 연속 히트 광고를 만들어낸 코마코의 권덕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인터뷰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56호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전통음료인 식혜와 김보성이라는 ‘의리’ 캐릭터는 곧바로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나.

광고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아이디어를 낼 때에는 광고 대상이 되는 제품과 상관이 있든 없든 ‘지구 전체를 한 번 스캔해본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비락식혜도 그렇다. 전통 음료라고 해서 처음부터 협소하게 생각을 좁혀서 항아리 속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정말 온갖 것을 ‘스캐닝’하던 중 막내 팀원이 “김보성의 의리 시리즈 패러디가 유행”이라며 재미있는 패러디 콘텐츠를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나 역시 “재미있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막내 팀원이 그 패러디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왔다. 그날 저녁 회의에 아예 구성안을 들고 들어온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의리’라는 콘셉트를 만들어 왔다. ‘어르신들 드시는 음료’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젊은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확대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것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젊은 사람들도 몸 생각해서 색소, 탄산, 카페인 없는 전통 음료인 식혜를 마시도록 유도하고 이를 ‘자신의 몸에 대한 의리’로 개념화하면 분명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에 배우 김보성 캐릭터와 비락식혜를 연결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의리 열풍’을 몰고 온 비락식혜 광고의 한 장면.

2012년에 ‘남자라면’이라는 라면 광고에 당시 ‘더티 섹시’ 이미지로 각광받던 배우 류승룡을 모델로 썼다. 이 광고도 재미있었고 평도 좋았다. 특히 ‘남자라면’이라는 제품명과 배우의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졌다. 제품 이름과 모델의 적합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보성과 비락식혜에서 적절성 혹은 적합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걸 만들어내느냐 마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유행하는 유머 코드나 재미있는 현상 등을 젊은 팀원들이 포착해 광고에 활용해 보자고 들고 오는 사례가 꽤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제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김보성과 비락식혜는 ‘몸에 좋다’는 다소 직접적인 부분과 김보성이 그간 만들어온 ‘우직한’ 이미지, 한때의 큰 유행이 지난 뒤에도 꿋꿋이 전통음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비락식혜의 이미지가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또 우리의 목표 고객이었던 젊은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의리’라는 단어와 이미지를 변형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적합성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작년에는 배우 이병헌을 모델로 한 베가 아이언 광고를 개그맨 김준현을 써서 똑같이 패러디한 ‘왕뚜껑 광고’도 만들었다. 올해 비락식혜도 그렇고 ‘브랜드 부활’에 성공했는데….

2013년 전파를 탔던 왕뚜껑 ‘단언컨대’ 광고.

장수 브랜드, 조금 처져 있는 오래된 제품이 많다. 이런 제품들은 ‘친구이긴 한데 잘 안 만나게 되고 소원해진 친구’ 정도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브랜드, 그 제품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가 현재 소비자에게 전혀 필요 없다면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되살릴 수 없다. 그런데 분명 소비자들과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즉 멀어진 친구 같은 관계라면 다시 만나게 해줘야 한다. 가장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법이 뭘까. 소원해진 친구 사이라면 ‘경조사’가 제격이다. 굳이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 필요 없는 상황 아닌가. 그저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그걸 계기로 다시 연락하고 지내면 되는 거다. 비락식혜 광고는 경조사 중 ‘경사’에 해당하는 코믹한 접근을 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내나. 소비자 트렌드 파악 방법은….

끈기가 중요하다. 끈기라는 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될 때, 끝까지 그걸 놓치지 않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생각의 코너’를 딱 돌 때 보통 사람들은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냥 놓아버리고 만다. 근데 바로 그 ‘생각의 코너’를 돌아가면 그 지점에 아이디어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이디어가 막히면 기다린다.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도 대충 방향은 예상하고 그쪽을 보면서 기다린다. 아이디어, 창의적 생각을 기다리는 과정도 비슷하다. 생각의 폭을 최대한 넓혀 놓고 최근의 사회 트렌드, 내가 광고할 제품에 대해 최대한 많이 연구를 한 상태에서 방향을 잡아놓고 기다리는 거다. 단순히 광고 기획이나 제작을 할 때뿐 아니라 소비자 변화를 조사할 때에도 이 같은 끈기가 필요하다. 시장 조사나 유행 파악을 인위적으로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민감해져서 바라봐야 한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