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2억 달러를 쏟아부은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지 못할 만큼 권력자가 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자신감과 오만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자본주의 자체이며 미국 자체이다. 마크 월버그 같은 배우들은 말이 좋아 주연이지 실제론 영혼도 없고 뇌도 없으며 단지 울퉁불퉁 근육으로 존재를 이야기하는 액세서리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트랜스포머란 이름은 자동차와 로봇을 오가는 영화 속 외계인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영화’도 되었다가 시도 때도 없이 ‘광고’로 변신하는 이 영화 자체를 일컫는 단어에 가깝다. 심지어는 죽기 직전 상황에서도 우유팩에 빨대를 꽂은 뒤 카메라를 향해 우유 상표를 제대로 보이면서 쭉쭉 빨아 먹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란 것인지, 영화는 ‘악당들이 미국 수사당국의 습격을 받기 전 본거지를 중국으로 옮긴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끌어와 중국으로 무대를 옮긴 뒤 영화 후반부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는 이 영화의 제작비 중 상당액을 댄 중국 기업들을 위한 ‘계약이행’인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의 최대 소비처로 떠오른 중국을 위한 고객서비스인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무섭다. 양계장 암탉처럼 이 영화는 새로운 시리즈를 알 까듯 까고 또 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개봉 후 수일 동안 중국에서 거둔 수입만으로도 이미 제작비를 뽑았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지구에서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브랜드와 새로운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는 한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스폰서를 구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터다. 이러다간 마이클 베이의 손자가 ‘트랜스포머 27: 사라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시대’, 손자의 손자가 ‘트랜스포머 43: 이번엔 진짜로 사라진 시대’, 그리고 손자의 손자의 손자가 ‘트랜스포머 78: 진짜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진짜로 돌아온 시대’를 만들지 않을까 말이다. 새로운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나오면 우리는 관성적으로 극장을 찾을 것이고, 또 좀비처럼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볼 것이고, 새로운 시리즈는 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이런 뜻에서 나는 기존 트랜스포머 1∼3편에 출연해 세계적인 스타로 뜬 젊은 배우 샤이아 러버프의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그는 성공할 게 뻔한 이번 트랜스포머 4편의 주연을 고사한 채 매우 생경한 시도에 자신을 던졌다. 러버프는 얼마 전 영화계의 ‘이단아’란 소리를 듣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문제작 ‘님포매니악’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그는 “할인마트의 자동문처럼 나는 열린다”라면서 무차별적 섹스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는 한 여성의 상대역인 무뇌아 청년으로 나와 영 게을러 보이는 성기마저 떡하니 드러내는 것이다. 트리에 감독의 열성 팬인 러버프는 “성기 사진을 보내 보라”는 트리에 감독의 요구에 흔쾌히 응하면서까지 이 작품에 출연하기를 열망했고, 결국 그는 큰돈을 버는 대신 ‘전위’라는 예술가의 소중한 비전을 챙긴 것이다.
나는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또 나오면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새로운 세계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오후 8시 반 일일연속극처럼 만들었다 하면 성공하는 이 시리즈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더 크게 더 세게’를 외치며 의미 없는 속편만을 쏟아내면서 ‘바보들에게 딱 맞는 싸구려 기성품’이란 핀잔까지 들었던 할리우드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깊고 철학적이고 실험적인 블록버스터들을 시도하면서 스스로를 혁신해 왔건만, 마이클 베이는 이번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통해 이런 진화의 시곗바늘을 다시 과거로 몇 바퀴나 돌려놓았다. 트랜스포머들아, 이젠 너희 별나라로 가버려! 지구는 우리가 알아서 지킬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