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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산층이 1920년대 英 하인들보다 못한 10가지 이유

입력 | 2014-07-10 03:00:00

[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영국 드라마 ‘다운턴 애비’의 한 장면. 이미지 캡처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요즘 미국에서는 ‘다운턴 애비 경제(Downton Abbey economy)’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다운턴 애비’란 1920년대 영국의 한 귀족 가문의 고급 저택과 거기에 거주하는 하인들의 삶을 그린 영국 드라마로 우리나라 EBS에서도 방영하고 있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필자도 이 드라마는 몇 번 본 적 있다.

‘다운턴 애비 경제’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현재 미국 중산층의 생활이 드라마에 나오는 하인들의 삶과 견주어 볼 때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용어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가 1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다운턴 애비 경제로 향하는 미국의 위험’이라는 칼럼에서 처음 제기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과 마켓워치 등의 언론과 피터 린더트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 용어를 사용해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경고하고 있다.

마켓워치에 실린 ‘다운턴 애비 하인들이 미 중산층보다 더 나은 이유 10가지’ 기사를 요약해 본다. 그것들을 보면 현재 미국의 중산층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인들은 (해고가 없는) 평생직장을 가지고 있다. 둘째, 그들의 일은 절대로 외주(아웃소싱)되지 않는다. 셋째, 하인들의 주인(상사)은 (요즘 상사들보다) 더 인간적이다. 넷째, (저택에 함께 살기 때문에 따로) 출퇴근을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다섯째, (주인에게 만들어 주는 음식을 함께 먹기 때문에) 잘 먹는다. 여섯째, 주거와 직장 환경이 훨씬 더 좋다. 일곱째, 세금이나 주택보험 드는 것 없이 (주인이 갖고 있는 화려한) 숙박시설을 공짜로 사용한다. 여덟째, 하인들이 대하는 사람들이 까다롭지 않은 좋은 이들이다. 아홉째, 구질구질한 잔소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복잡한 서류작업이 없다.

1920년대 영국 하인들이 처했던 환경과 정확히 반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재 미국 중산층을 비교하면 드라마 속 하인들과 똑같이 빚의 노예로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천하의 미국 중산층을 영국 귀족의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하인들과 견준다는 것조차도 놀랍고 민망스러운데 하물며 그들보다 못하다니….

린더트 교수는 마켓워치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1920년대의 영국의 다운턴 애비 경제는 사실 작금의 미국 상황보다 오히려 덜 불평등했다.” 그러면서 “지니(GINI)계수(소득 대비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만 봐도 현재 미국이 1920년대 영국만큼 높거나 심지어 영국의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니계수란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계수가 높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만큼 생계 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층 간 소득 불평등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미국 중산층이 얼마나 지금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만을 제시하겠다.

마켓워치는 결론적으로 “미국인의 절반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부엌데기 데이지나 집사 토머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꼴”이라면서 “(미국 중산층이나 영국 하인들이나) 그들 모두 결국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라고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마켓워치의 지적은 과장일까, 아닐까. 불행히도 과장이 아니라는 근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1월 시사경제지 타임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당장의 생존 때문에 미래를 위한 계획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지속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꾀해야 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고 미국기업개발공사(CFED)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했다. 이들은 소위 ‘유동자산 열악(liquid asset poor)’ 등급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미국인의 절반의 삶은 좀 더 나을까?

이 역시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의 사람들, 즉 미국인 전체의 44%가 4인 가족 기준 가구당 평균 5887달러의 유동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 1인당 15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불의의 사고나 재난을 당했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정도의 여유를 말한다.

기업개발공사는 이러한 재정적 불안 상태는 단지 저소득층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산층 가구의 약 25%가 ‘유동자산 열악’ 등급에 속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결국 미국에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은 고작 전체 인구의 5%도 안 되고 나머지 사람들 중 과거에 중산층이라고 간주되던 사람들 대부분이 긴급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즉 수중에 돈 한 푼이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재 미국이라는 말이다.

설사 얼마간의 여유자금을 비축해 두고 있다 하더라도 거의 아무것도 없는 이들(즉, 저소득층)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지금 미국 중산층의 현주소인 것이다. 타임지는 미국 전체 주에서 주로 남부와 서부에 속한 조지아, 미시시피, 앨라배마, 네바다, 아칸소 주 등의 시민들이 이러한 재정 불안에 극심하게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사회보장국(SSA)이 2013년 11월 초 내놓은 분석에 의하면, 만일 미국인 중 연봉이 3만 달러(약 3000만 원)인 자가 있다면 그는 전체 미국인의 53.2%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다. 이들이 바로 현재 미국 시민들의 평균 소득을 버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미 보건복지부(HHS)의 연방빈곤지침을 보면 2012년 4인 가족 가구의 빈곤을 가르는 가구 소득은 2만7010달러(약 2700만 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곧 미국인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현재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소득 연 1만5000달러(약 1500만 원)를 버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이들은 미국인 32.2%보다 더 수입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정도의 일자리만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허핑턴포스트도 극히 일부를 제외한 미국인 대부분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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