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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타격은 ‘여자의 마음’ 같다는데…

입력 | 2014-07-10 03:00:00

올스타전 팬서비스인 홈런레이스… 밸런스 무너질까봐 출전 꺼리기도
“프로는 한 경기에 영향 받아선 안돼…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
흔들림 없는 이승엽이 남자 중 남자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올스타전에 가면 그 꽃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올스타전에서 펼쳐지는 홈런레이스가 무대입니다. 홈런레이스는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모두 인기 있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정작 선수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치라고 뻔히 던져주는 공을 제대로 못 치면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한 말로 ‘오버’를 많이 합니다.

경기 전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유심히 본 팬들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타자들은 대개 밀어 치는 훈련을 합니다. 공을 끝까지 보고 정확한 타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밀어치기는 타격 훈련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홈런을 치려면 더 많은 힘을 써야 합니다. 당연히 당겨치기가 유리합니다. 그냥 당겨 치는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인 당겨치기가 나오기 십상입니다. 세게 친다고 꼭 홈런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2006년 홈런레이스에서 이택근(넥센)은 단 1개의 홈런을 치고도 0개에 그친 양준혁(전 삼성)을 누르고 1위를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올스타전을 앞두고는 홈런레이스 포기를 선언하는 타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의 떠오르는 별 마이크 트라우트에 이어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도 홈런레이스 출전을 거절했습니다. 3년 연속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 출전을 확정지은 이대호(소프트뱅크)도 “올스타전 출전은 영광스럽지만 홈런레이스에는 나가고 싶지 않다. 너무 힘이 들어가 밸런스가 나빠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홈런레이스 1위를 한 적이 있는 홈런레이스 ‘전문가’입니다.

이대호나 카브레라 급의 대선수들이 정말 큰 스윙 몇 번에 영향을 받는 걸까요. 타격 기술의 대가로 평가받는 박흥식 롯데 타격코치에게 물었더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타격은 민감하고 예민하다.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긴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한번 무너진 밸런스가 길게는 한 달을 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홈런레이스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 몇몇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A 선수는 “‘못 치면 어때’라는 마음을 먹고 타석에 들어서지만 수만 개의 눈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때 밸런스가 무너져 올스타전 이후 한 달가량 홈런을 못 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사진)은 역시 남다릅니다. 그는 “훈련 때 선수들끼리도 음료수 내기 홈런 경기를 벌이곤 한다. 프로 선수라면 올스타전 한 경기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편하게 즐기고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홈런레이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그는 올해 올스타전에는 출전하지 않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3085개)를 기록한 장훈 선생은 “타격은 여자의 마음과 같다. 오늘 잘 맞다가 다음 날엔 맞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 여자의 마음에 흔들리는 젊은이가 바로 대부분의 선수들입니다. 이에 비해 산전수전 다 겪은 이승엽은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남자 중의 남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14 올스타전은 18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립니다. 홈런레이스 예선은 하루 전인 17일, 결선은 올스타전 경기 시작 전에 벌어집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