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문학관 개관 맞춰 자신의 이름 딴 문학상 만드는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은 말했다. “시골 시인은 3류나 4류라고 여기는 정서를 극복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작고 외로워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책을 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서울을 기웃대지 않고 싶다. 지금은 그저 누군가가 힘들 때 내 시를 읽고 견딜 만했으면 좋겠다.” 공주=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나태주 시인(69)의 시 ‘풀꽃’은 교보문고 광화문점 건물 외벽에 내걸려 팍팍한 도시인들을 다독였고, 드라마 ‘학교 2013’의 가혹한 교실에서 낭송되며 희망을 불러왔다. 가진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로 따스하게 보듬어온 시인이 올가을 ‘도발’을 감행한다. 10월 충남 공주의 나태주 풀꽃문학관 개관에 맞춰 자신의 이름을 딴 ‘나태주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기로 한 것이다. 공주시가 문학상 상금 1000만 원과 운영비를 지원한다. 시인은 공주문화원장을 5년째 맡고 있다.
문단에는 문학상 제정에 관한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유명 문인이라도 문학상 제정 제안이 오면 겸손하게 거절하고 사후에 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2년 전 소설가 이외수가 대상그룹 의 지원을 받아 ‘이외수 문학상’을 만든 일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외수 문학상은 1회만 진행하고 기업 후원이 중단돼 현재 다른 지원처를 알아보고 있다.
나태주 문학상은 등단 20년 내외의 기성시인을 대상으로 2013∼2014년에 낸 창작시집 한 권을 심사한다. 난해하고 현학적이며 세상에 침을 뱉는 시보다는 비교적 짧고 세상을 맑게 해주는 시를 쓰는 시인에게 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내가 문학상을 타는 데 고달파서 화풀이하는 건지도 모른다. 화풀이 차원에서 끝낼 게 아니라 승화시켜야 한다. 내가 평생 빚진 시와 문학에 보답하고 싶었다. 나의 시와 뜻을 같이하는 시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공주라서 가능한 것이지 복잡한 역학관계가 작동하는 서울이라면 이렇게 문학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학상을 만든 시인은 최근 제26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서른네 번째 시집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푸른길)를 펴냈다.
“(정지용 문학상은) 감사하지만 나는 상을 받을 때가 지났다. 상을 만들려는 사람이지, 이제. 젊은 시절에는 상을 받으면 뛸 듯이 기뻤지만 나이 들어서는 근심스럽기도 하다. 젊은이들과 겨뤄서 당당한가, 늙어서까지 상을 받아야 하나…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글을 쓰더라도 책으로 내거나 잡지에 발표하거나 평론가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쓰지 않으리라,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문학상을 타기 위해 더더욱 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불완전하게 떠나는 것이 사람이고 인생이다. 타고 가다가 마는 것이 완성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열심히 하루하루 살고 싶다. 눈에 띄지 않지만 지구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시인이고 싶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