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4>알 권리 막는 공공언어 해석 어려운 ‘행정 외계어’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말이 너무 많아요. 한국어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김나은·22·대학생)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준비한 행정·공공용어 이해도 검사에 응한 20대 대학생들의 반응이다. 이들은 “공공·행정용어가 지나치게 어려워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팀은 최근 20대 남녀 33명을 대상으로 행정·공공용어 이해도 검사를 실시했다. 응시자에게 주어진 단어는 25개로 모두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의 공문서와 통지문, 보도자료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단어를 선정했다. 실제 사용 상황과 최대한 가깝게 하려고 해당 용어의 한자를 병기하지 않은 대신 그 용어가 쓰인 예시 문장을 함께 제시해 응시자들이 해당 용어의 뜻을 적게끔 했다.
특히 어렵게 느끼는 행정·공공용어로는 절반이 넘는 51.5%가 ‘한자어나 일본어에서 유래한 용어’를 꼽았다. ‘건축 농업 등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24.2%)와 ‘축소나 생략이 심한 용어’(9.1%), ‘영어에서 유래한 용어’(6.1%)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정답률이 3%에 불과한 ‘호안(護岸·해안이나 하천가에 침식 방지를 위해 만든 구조물)’ ‘제척(除斥·배제하여 물리침)’ ‘집수정(集水井·물 저장고)’ 같은 용어는 한자어 또는 일본어 유래어였다.
오답 중에는 엉뚱한 뜻을 적거나 아예 원래 의미와 정반대의 뜻을 적은 경우도 많았다. 호안의 뜻을 ‘좋은 방안(好案)’이나 ‘호남지역 해안(湖南海岸)’이라고 적거나 제척을 ‘제거(除去) 및 세척(洗滌)’이라고 적은 것은 애교 수준. 불요불급(不要不急·필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의 뜻을 ‘꼭 필요한’으로 알고 있거나 일할계산(日割計算·요금이나 임금 따위를 하루 단위로 계산)을 ‘한 번에 계산’으로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에서도 여러 번 대책이 나왔는데도 행정·공공용어 순화가 더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4.6%가 ‘공무원들이 타성에 젖어 순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답했다. 21.2%는 ‘실제로 용어가 순화됐는지 평가하고 보상(또는 제재)하는 체제가 미흡해서’라고 답했다. ‘대체용어가 마땅치 않아서’라는 답변은 6%에 불과해 정부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자세 변화를 촉구하는 의견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