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4>알 권리 막는 공공언어 지자체 문서 석달치 분석해보니 순화대상 용어 32만번이나 써… 국어책임관 제도 있으나마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2월 312개의 행정용어를 순화 대상 용어로 고시해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여전히 해당 행정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명대 국어문화원 서은아 연구교수가 충남도청과 15개 시·군청 홈페이지 누리집에 있는 보도자료, 공고문, 고시문(2013년 6∼8월)을 분석한 결과 문체부 지정 순화대상 행정용어 312개 가운데 86.5%에 이르는 270개가 계속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270개의 단어가 공문서에 사용된 빈도를 세어 보니 32만 번을 넘겼다.
270개 용어 가운데 외래어가 157개(58.2%)로 가장 많았고, 한자어는 96개(35.6%)에 이르렀다. 이들 기관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순화 대상 용어는 3개월간 3만2251번 언급된 ‘파일’이었다. 뒤이어 ‘동법’이 2만4099번이었고 ‘투어’가 2만945번, ‘소요’가 1만5615번, ‘유관기관’이 1만4323번 등장했다.
서 교수는 행정기관의 행정용어 순화 이행 속도가 늦은 이유에 대해 유명무실한 ‘국어책임관제’를 꼽았다. 그는 “국어기본법에 따라 2005년부터 모든 공공기관에서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지만, 조사기관의 국어책임관은 대부분 1년 임기로 본래 업무를 담당하며 국어 업무를 겸업하는 형태였다”며 “국어책임관들 스스로 행정용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데다 대응하는 순화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에서 어려운 행정용어 사용을 남발할수록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0년 현대경제연구원의 ‘공공언어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57%가 공공문서 및 정책 용어에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고, 67.4%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고 답했다.
공공기관의 어려운 행정용어 사용 남발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국어원은 어려운 행정용어를 쓰는 탓에 공공기관에서 낭비되는 비용이 2010년 기준으로 17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으며 현대경제연구원도 어려운 정책용어로 생겨나는 국민과 공무원의 시간 비용이 연간 285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