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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셜록 홈스와 ‘해결사’

입력 | 2014-07-12 03:00:00

사설탐정 합법화 초읽기… 그 빛과 그림자




‘현상금 사냥꾼.’

그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그 대신 스스로를 ‘사설탐정’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은신처로 알려진 전남 순천시 송치재 일대에 모습을 드러낸 ‘수상한 외지인’의 이야기다.

“경찰이나 검찰 직원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유 전 회장에 대해 자꾸 물어요.”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이런 외지인은 귀찮은 존재다. 송치재 맞은편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는 유모 씨(68·여)는 “우리 가게가 한때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잘못 알려졌다”면서 “그때 이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는 동네를 이 잡듯 탐색하는 외지인들. 실종된 사람을 추적하거나, 남의 뒤를 밟는 일을 주업으로 삼아 온 사설탐정이다.

국내에선 불법인 미행, 개인정보 수집 등을 통해 일하다 보니 음지에 숨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는 “현재 전국적으로는 약 3000개 업소에서 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며 “월 수익은 업소당 500만∼1000만 원 선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송치재에서 만난 사설탐정 이모 씨(70). 그는 전직 경찰이다. 미제 사건이나 신속한 해결을 요하는 사건 현장에서 일도 많이 했다. 이 씨는 “물론 현상금이 탐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묘한 도전의식도 생긴다”고 말했다.

순천 출신 사설탐정 김모 씨(54)는 같은 지역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유 전 회장의 뒤를 쫓고 있다. 김 씨는 유 전 회장이 순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수사기관이 이 동네 사정을 나보다 잘 알겠느냐”며 “지인을 활용해 구원파와 유 전 회장에 대한 정보를 모은 뒤 결정적 제보를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20년전 헤어진 엄마 찾아주세요” 하루만에 모녀상봉 ▼

[한국판 셜록 홈스 나오나]
사설탐정 합법화의 ‘빛’

도마에 오른 ‘민간 조사업’


영화 ‘그림자살인’의 한 장면. 살인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한 한 의학도가 “누명을 벗을 만한 증거를 찾아 달라”며 사설탐정 진호(황정민)를 찾아간다. 진호는 여류 발명가에게서 수사에 필요한 만시경(망원경과 카메라 기능을 장착한 기계)과 은청기(은밀히 듣는 기계)를 받아와 사건의 단서를 풀어나간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장은 “개인 송사에 필요한 증거 수집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민간 조사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설탐정들의 활동이 실제 수사에 도움이 될까. 유병언 전 회장의 ‘현상금 사냥꾼’들이 나타나면서 민간 조사업 합법화에 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민간 조사업은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사사로운 사건·사고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말한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설탐정은 개인의 의뢰를 받아 대상자를 미행·추적하는 사람으로 엄밀히 말해 ‘민간 조사원’의 부분집합일 뿐 동의어로 보긴 힘들다. 현행법상 남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미행을 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유병언 추적 사건을 맡은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사설탐정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곧 수사기관이 무능하다는 말과 같다”며 “수사 권한이 없는 사설탐정의 일과 경찰의 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일부 경찰들은 “사설탐정이 합법화되면 은퇴한 경찰들에게 재취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바라 보기도 했다.

민간 조사업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990년대 말부터 나왔다. 이후 2005년 이상배 전 국회의원의 ‘민간 조사업법’ 발의를 시작으로 여러 의원들이 민간 조사원의 업무 범위를 변경해 법률안을 발의했고, 현재는 윤재옥, 송영근 의원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안에 따르면 민간 조사원은 △(보험 관련) 사고의 원인과 피해 사실에 관한 조사 △소재가 불명한 물건(분실물, 도피자산 등)의 위치 확인 △미아, 가출인, 실종자, 불법 행위자에 대한 소재 파악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관한 자료 수집 등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에 민간 조사업 육성 및 지원을 포함시켰다.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중요한 서비스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음지에서 운영되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막기 위해서도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데다 아직 이를 관리할 감독 주체도 명확하지 않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법인 것 알지만”


“키는 6피트(180cm). 하지만 너무 깡말라서 남들은 더 크게 본다. 각지고 돌출된 턱은 강한 인상을 준다. 살집 하나 없는 얼굴엔 중간 부분이 툭 튀어나와 기민하고 단호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부리코가 자리잡고 있다.”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 ‘셜록 홈스’에 등장하는 세계 최초 민간 자문탐정인 ‘홈스’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취재진이 만난 한국 탐정 A 씨의 외모는 날렵한 홈스와 전혀 딴판이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티셔츠 위로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풍채가 좋아 흡사 ‘조폭’과 같은 느낌이었다. 취재팀의 연락을 받은 그는 이름도, 나이도 숨긴 채 “경기 여주터미널로 오라”는 말만 남겼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취재팀을 알아본 A 씨가 먼저 다가왔다. 손에는 스마트폰과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이 각각 한 대씩 들려 있었다.

“자잘한 심부름이나 할 생각으로 창업을 했는데, 이 바닥에서 10년을 굴렀습니다.”

A 씨가 이 업계에 뛰어든 건 10년 전. TV에서 ‘강남에서는 자잘한 심부름이나 배달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말만 듣고 창업을 알아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심부름 업체’라고 쳐보니 연관검색어로 ‘흥신소’가 나왔다. 돈을 떼였다든지, 부인이 바람을 피운다든지 하는 사연을 나열하며 흥신소를 찾는 글들이 쏟아졌다.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며 ‘장사가 꽤 되는구나’ 하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다.

그는 무작정 흥신소 업체 한 군데에 전화를 걸어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업체 사장도 성실한 그를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A 씨는 이곳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법’ ‘미행하는 법’ 등 탐정으로서의 노하우를 차근차근 배웠다. 또 A 씨는 미행, 신상 털기, 증거 수집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중간업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중간업자와 인맥을 쌓고, 일도 손에 익자 독립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윤창중 찾아달라”


“별의별 부탁을 다 받아봤지만 ‘윤창중을 찾아달라’는 건 정말 황당했어요.”

그가 꼽는 가장 황당한 손님은 바로 ‘기자’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방문 중 성추문에 연루되자 기자들은 일제히 윤 전 대변인 찾기에 나섰다. 한국에 돌아와 거취를 밝히고 칩거에 들어간 그를 만나 먼저 인터뷰를 하면 특종, 반대의 경우 낙종이 되는 상황. 마음이 답답해진 한 기자가 A 씨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A 씨는 “워낙 알려진 인물을 찾아달라고 하니 작업하다가 내가 적발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며 “추적 방법들만 적당히 알려주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는 실종자 찾기와 불륜 현장 적발이다. 불륜 현장 적발은 300만∼500만 원 정도 받는다.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의심하게 된 정황을 자세히 듣는다. 상황을 최대한 잘 파악해야 동선이나 인력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놓았는데, 저녁에 깜빡거리는 불빛이 너무 많이 비친다면 불륜일 확률이 크죠. 화장실 갈 때 안 가져가던 전화기를 챙긴다든지 행동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요. 평소에 안 늦던 사람이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면 우선 불륜 상대가 직장 동료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작업에 들어갑니다.”

불륜 의뢰의 경우 A 씨는 2명이 한 조를 이뤄 2개조를 투입한다. 매일 미행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고, 지금은 의뢰가 들어오면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추적한다. 며칠간 이렇게 위치추적기가 보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동선을 파악한 뒤 현장에 뛰어든다. 이때 여직원 한 명을 반드시 투입하는 게 A 씨의 노하우. 연인으로 가장해 가까운 거리에서 미행하기 위해서다.

때론 불법도 저지른다. 국내에선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A 씨는 “전화번호 하나만 알면 그 사람 사는 곳, 실제 나이, 하는 일 등을 알 수 있다”며 “이렇게 기본정보를 캐내는 건 하루도 안 걸리는데 건당 5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파악하면 4대보험 가입 여부, 출신 학교 등 다양한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의뢰 목적이 불순한 경우도 많다. 이날 취재팀과의 인터뷰 중에도 한 의뢰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부인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든 사업가였다. 집과 주식, 적금 등 재산 일부를 부인과 부인 동생 명의로 해두었는데, 부인이 불륜에 빠진 것 같다며 미행을 의뢰한 것이다. 이 의뢰인은 “불륜 현장을 적발하면 달려가서 때려죽이고 싶다”며 “상대 남성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데 납치·감금도 해달라”고 주문했다.

A 씨는 “옛날이면 몰라도 요즘처럼 단속이 심한 때는 이런 부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최근에는 경찰의 단속 움직임이 보여 나도 몸을 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이때쯤 단속반이 뜨겠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업계에서 단속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어려운 상황을 넘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손놓은 실종자 찾기는 민간 몫”


하지만 불륜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A 씨도 순기능을 할 때가 있다. 오래전 헤어진 가족이나 지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다. A 씨는 지난해 “15년 전까지 같이 일했던 직장 선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기술이 좋아 업계에선 소문이 자자했는데, 개인사업을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뒤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소리만 들었다는 것이다. 의뢰인은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그 선배를 찾아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A 씨는 우선 당시 그가 다닌 회사를 통해 취업 때 낸 주민등록등본을 찾아냈고, 가족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확인했다. 그것을 토대로 추적해 선배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15년 전 헤어진 선배는 소문처럼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살면서 여전히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준 후배를 반가워했다.

또 다른 민간 조사원 B 씨는 올해 초 한 여성의 부탁을 받아 수임료 200만 원을 받고 어머니를 찾아줬다. 의뢰인은 20년 전 가정불화로 사춘기를 겪다가 집을 나갔다. 이후 홀로 성장해 결혼한 뒤 이민을 갔다. 호주에서 자리 잡은 그녀는 어린 시절 홧김에 부모 자식의 인연을 끊었던 게 후회돼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생년월일과 이름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B 씨는 그녀에게 선금 100만 원을 요구했다. 이 중 30만 원을 떼 전화번호 찾아내기 전문가인 중간업자를 섭외했다. 작업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여성의 어머니 전화번호를 찾았다. B 씨는 의뢰인에게 어머니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나머지 100만 원을 받았다. 일이 끝난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의뢰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울면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묻었던 딸을 찾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현재 법률상 이 같은 업무는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불법이다. 실종된 가족을 찾는 것을 제3자에게 부탁할 경우, 무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만 돈을 받고 찾아주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소재를 파악하거나, 미행을 하는 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은 23년간 647명의 실종자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냈다. 실종 초기에는 경찰에 신고돼 수사가 진행됐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경찰도 손을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회장은 협회에 의뢰한 이들에 한해 무상으로 실종가족 찾기를 하고 있다.   

▼ “아내 불륜남을 잡아서 감금해주시오” 무서운 의뢰도 ▼

[한국판 셜록 홈스 나오나]사설탐정 합법화의 ‘그림자’

한 국특수행정학회가 주관하는 민간 조사업 교육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범죄현장의 지문채취 과정을 교육받으며 지문을 판독하고 있다. 민간 조사업이 정부가 육성할 41개 신(新)직업 중 하나로 선정되자 전·현직 경찰관, 보안업체 직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민간 조사원 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나 회장은 “협회를 통해 파악된 실종가족의 수요는 어림잡아 계산해도 몇십만 명에 이른다”며 “민간 조사업을 합법화한다면 실종자 가족들의 수요가 많을 텐데 지금은 불법이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직업 창출” 대 “사생활 침해”

한국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회장이 “유사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찾아 달라”는 한 커피 수입사의 의뢰를 받아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모습. 업계에서는 민간 조사업이 법제화되면 단순 불륜 추적뿐 아니라 모조품 생산업체 적발, 보험사기 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DB

민간 조사업의 영역은 실종자 찾기, 기업정보 수집,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모조품 적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 때문에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역기능을 하는 불법 흥신업과 민간 조사업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전승훈 힐앤어쏘시에이츠(H&A) 기업 리스크매니지먼트 한국지부장은 “민간 조사업이 합법화되면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인재채용을 앞두고 기업, 사람에 대한 정보 수집을 대신해주는 고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며 “이런 분야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전체 민간 조사업 시장에서 건당 몇백만 원 하는 불륜 뒷조사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지부장이 일하는 H&A사는 기업의 위기관리를 위한 업계 평판조사 등 정보 수집을 주로 하는 홍콩계 기업이다.

그가 예로 드는 또 다른 민간 조사원의 활동 영역은 ‘지식재산권 보호’다. 실제로 H&A사는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아 자동차 부품의 짝퉁(모조품)이 태국 내에서 불법 수입·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H&A사는 샘플을 구매하고 업체 관계자를 미행하며 증거를 수집했고, 단속기관에 고발해 압수수색에 동참했다. 전 지부장은 “지식재산권 보호, 보험사기 조사 등은 일반 국민은 잘 알지 못하는 민간 조사원의 활동 영역”이라며 “단순 불륜 뒷조사에 비해 시장도 훨씬 크고 수요도 많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인탐정 강효흔 씨 역시 한국의 민간 조사업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해외로 도피한 경제사범을 색출해 송환을 돕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강 씨는 1990년대 대성그룹 해외사업부 염모 계장이 사장의 이름을 도용해 은행에서 50억 원을 대출받아 도주한 사건을 해결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는 염 계장의 항공기록과 전화기록을 일일이 추적하고, 현지 친척들을 탐문수사한 끝에 9개월 만에 은신해 있는 범인을 찾아냈다.

강 씨는 “미국은 전문직 면허국에 징계위원회를 설치해 민간 조사원에 대한 소비자 고발을 접수하고, 심사를 통해 면허 정지나 취소 처벌을 내린다”며 “제도가 오래된 미국도 여전히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민간 조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며 부작용을 줄여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민간 조사업에 관한 논의는 초보 단계에 불과해 민간 조사업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온다. 사생활 침해 위험을 관리감독할 중앙부처조차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 제3자에게 정보의 권한을 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면서 “정보의 단계를 나눠 필요한 정보만 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줄 필요가 없는 정보까지 유출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간 조사업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장점으로 꼽는 ‘은퇴 후 양질의 일자리 제공’ 역시 “오히려 역기능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조사업과 관련된 직업능력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한민간조사협회의 하금석 협회장에 따르면 매 학기 교육생 중 전·현직 경찰의 비율은 약 20%다. 그만큼 개인정보 및 경호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재취업 직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은행원 등은 다른 직업에 비해 개인정보 수집이 용이한 직업”이라면서 “은퇴 후 민간 조사원을 할 계획이 있다면 현직에 있을 때 정보를 빼돌리겠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수연 sykim@donga.com·임현석·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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