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을 美學으로 승화시킨 춤꾼 승무 등 ‘한성준-한영숙의 맥’ 이어 한국 남성춤의 멋-흥취-풍류 되살려
승무를 추고 있는 고 정재만 선생. 고인은 승무뿐만 아니라 살풀이춤 학무 훈령무 태평무의 대표적인 남성 무용수로 활약해왔다. 벽사춤아카데미 제공
고인은 전북 익산의 제자 강습회를 마치고 다음 날 부산에서 열리는 강습회 참석차 가던 길에 변을 당했다. 13일 빈소를 찾은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지난해 정년퇴임 이후에도 후학 양성을 위해 강습회를 자주 여셨다”며 “춤의 대중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시다 돌아가셨다”고 애도했다.
경기 화성 출신으로 경희대와 동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고인은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무용가의 길을 걸었다. 인천 대건중 2년 시절, 서울 충무로의 송범무용연구소를 발견하고 무작정 찾아가 춤을 배웠다. 그의 춤을 본 한영숙은 절친했던 송범에게 “제자로 삼게 이애주와 정재만을 달라”고 청했다. 이를 계기로 고인은 승무, 학무, 살풀이, 훈령무, 태평무 등을 차례로 전수받으며 근대 한국 춤을 집대성한 한성준과 그 계보를 이은 손녀 한영숙의 맥을 잇는 춤꾼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한 최초의 남성무용수였다. 1972년 제7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승무로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조흥동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은 “대상을 받았을 당시 무용계에선 ‘승무춤의 천재가 나타났다’고들 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이매방, 이애주에 이어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7년부터 숙명여대 무용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정재만 남무단을 통해 남성무용수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과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 2002년 월드컵 전야제 등 굵직한 국가 행사에서 안무를 맡았다.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대통령 표창, 옥관문화훈장, 프랑스디종국제민속예술제 금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박순자 여사와 아들 용진 씨(한국무용가), 딸 형진 씨(한국무용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로 서울삼성병원 20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주교 수서동 성당. 02-3410-3151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