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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민간 수련시설 6곳 안전실태 르포

입력 | 2014-07-14 03:00:00

[여름철 대한민국 안전은]<上>청소년 수련시설
대피 안내도는 어디에?… “학생들이 낙서해 아예 없애버려”




화재에 취약한 조립식 건물… 어둡고 비좁은 대피로 경기도 한 지역의 청소년 수련시설은 화재에 취약한 조립식 패널로 지은 건물을 강당으로 이용하고 있었다(위쪽 사진). 객실의 대피로로 이용되는 통로 역시 각종 물품을 쌓아놓아 비좁았고, 사고시 많은 인원이 빨리 탈출하기 어려워 보였다(아래쪽 사진). 임현식 기자 ihs@dong.com

이달 초 찾아간 경기 서북부에 위치한 A학생수련시설 내 대강당.

학생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지만 출입문 외에 다른 대피로는 사실상 없었다. 위급상황에서 비상구로 쓰도록 한 별도의 계단은 있지만 정작 대강당과 계단 사이의 문이 항상 굳게 잠겨 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해 출입문으로 대피할 수 없을 경우 이 문을 통해 대피해야 하지만 평소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바깥에서 잠가둔 것이다.

이 대강당은 건물 5층에 위치해 비상구 외의 대피로는 창문밖에 없다. 하지만 창문에는 완강기도 설치돼 있지 않아 창을 깨고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만약의 경우 대피가 사실상 불가능한 장소지만 이 수련시설은 7월초부터 두 달간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각종 대형 참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시설운영자도, 이용자도 안전 문제는 여전히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1999년 6월 30일 19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 참사’가 발생한 지 15년째 되는 해다. 당시는 물론 올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4월 세월호 참사 등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 당국과 여론은 ‘안전’을 화두로 던졌지만 크게 나아진 점은 별로 없었다.

○ 불나면 어디로?


씨랜드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안전 전문가들은 화재 대피로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던 점을 참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불이 났을 때 이용할 대피로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거나 대피로 안내 표시가 건물 곳곳에 없다면 미처 대피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유독가스를 마실 가능성이 높다. 15년 전 씨랜드에 있던 아이들도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취재팀이 둘러본 경기도 내 B수련원 역시 대피로 안내를 위한 표시판조차 없었고, 화재가 일어났을 때 창문을 통해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완강기 역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청소년수련시설 운영규정상 2층 이상 건물에는 위급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완강기가 설치돼 있어야 하고, 재난 시 대피방법도 상세하게 안내해야 한다.

대피로 안내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더라도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았다.

A수련원의 경우 객실마다 비상구 안내도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안내문이 A4 용지에 폰트8 크기의 작은 글자로 써 있어 위급상황에서 한눈에 알아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객실 창문 역시 한 사람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크기(가로 50cm, 세로 30cm)여서 창문을 통해 탈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경기 북부의 C수련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취재팀이 최근 이곳을 찾아 “불이 나면 어떻게 도망쳐야 하느냐, 안내도는 없느냐”고 묻자 시설 관리자는 건물 본관 밖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건물 대피로 안내도를 꺼내왔다. A4 용지 절반만 한 크기에 손으로 대충 그린 건물 구조도였다. 관리자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복도에 출입구와 비상구, 계단 등이 그려진 커다란 건물 안내도가 있었다”며 “하지만 수련시설을 찾은 학생들이 안내도를 찢고 낙서를 하는 등 장난을 쳐서 아예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화재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방재 조치가 미흡한 수련시설도 많았다.

경기 남부 D수련시설의 식당 옆에는 액화석유가스(LPG)통 여러 개가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30도가 넘는 한낮의 열기를 잔뜩 받은 가스통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창고로 쓰는 복도 끝 교실에도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를 방출하는 합성섬유 커튼과 수건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처럼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수련시설이었지만 정작 소화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 녹슨 활동기구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으로 명성이 높은 경기 지역의 E수련원. 이곳에는 건물 3층부터 지상까지 이어진 약 10m 높이의 레펠 체험시설이 있다. 레펠은 담력을 키우기 위해 줄을 잡고 낙하하는 군대식 훈련 프로그램으로 추락 등 안전사고 위험이 큰 시설이다.

관리자를 따라 레펠 시설 3층으로 올라가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닥이 쑥 하고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철판을 여러 개 겹쳐놓은 바닥판이 덜컹거렸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판이 늘어나서 그렇다. 사고가 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레펠에 쓰이는 줄을 조정하는 도르래에도 녹이 잔뜩 슬어 있었다. 줄을 손으로 잡고 서너 번 흔들어 보니 녹슨 도르래가 ‘삐거덕’거리면서 시끄럽게 움직였다.

2012년에는 이곳에서 한 여학생이 레펠 훈련을 받던 중 머리카락이 줄에 끼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머리가 긴 학생들은 도르래나 줄에 머리카락이 엉킬 우려가 있어 머리카락을 묶고 참여하도록 지시해야 하지만 이런 지도 없이 훈련에 참여시킨 것이다. 하지만 사고 후에도 훈련장 앞에 유의사항을 적어두거나 도르래를 교체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소년시설관리에 관한 종합평가에는 못이 튀어나와 있는지 점검하는 항목이 있지만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현장에서는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음 주에 학생 200여 명이 예약된 경기지역의 F수련원 역시 곳곳에 못 머리가 튀어나온 게시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청소년들은 수련시설에서 다양한 육체적 활동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화재 대피로뿐만 아니라 각 활동 공간의 안전 규정도 상세히 마련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건물 전반에 대한 방재시스템과 건물 안전 등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세부 사항은 없는 상태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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