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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에 춤추는 ‘300년 魚시장’… 예술 옷 입은 ‘600년 잡화시장’

입력 | 2014-07-15 03:00:00

[젊은 열정, 젊어진 전통시장]<5>신구조화 돋보이는 유럽시장 2곳
독일 ‘함부르크 어시장’… 폴란드 ‘스타리 클레파시’




《 유럽의 유명 전통시장들은 대개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문양을 가진 곳도 있고, 정기적으로 기록을 남겨 역사를 기념하기도 한다. 유럽 전통시장은 이 과정에서 키워온 독특한 매력을 무기로 대형마트에 맞서고 있다.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유럽의 전통시장 중 두 곳을 찾았다. 》  

○ 전통시장서 록 공연… ‘축제 같은 시장’


13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 어시장’에 있는 대형 상가에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록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이 공연은 시장이 개장하는 매주 일요일 오전 5시(겨울에는 7시)에 열린다.

13일(현지 시간) 오전 4시 반. 독일 함부르크 시 엘베 강가에 있는 그로세 엘베스트라세 선착장.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었지만 상인들은 선착장을 따라 난 길 위에 노점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30분 뒤인 5시부터 개장하는 어시장에 찾아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5시가 되자 시장 한가운데 있는 3층짜리 대형상가에서 록 밴드가 공연을 시작했다. 1시간 뒤 상가는 공연을 보러 온 300여 명의 20∼40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드록 음악부터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같은 포크 음악까지 다양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며 공연을 즐겼다. 한 20대 남성은 “세대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공연이 끝나면 노점에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가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함부르크 어시장’은 1703년 문을 연 독일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약 1.5km 길이의 길 위에서 420여 개(여름 기준) 점포가 문을 연다. 일요일마다 5만∼7만 명의 손님이 몰린다.

함부르크 어시장은 본래 매주 일요일, 어부들이 모여 식료품과 생선을 거래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생선으로 만든 식료품과 과일, 잡화를 함께 파는 종합시장으로 변모했다. 이는 손님과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변신’한 결과다.

30대 때부터 이 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프랑크 씨(53)는 세계를 떠돌며 모은 불상(佛像)과 불화(佛畵), 세계 각지의 철제 안내판 등으로 트럭을 장식해 놓고 있었다. 고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유인 수단이었다. 그는 “20년 전 이곳은 그냥 수산시장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상가로 구성된 ‘이벤트형 시장’이 됐다”며 “모든 상인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부르크 어시장이라고 인근에 대형마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 상인들은 ‘이상하게도’ 대형마트 때문에 타격을 입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함부르크 알토나 지구의 소비자 보호·산업·환경국장인 지크프리트 호프만 씨(65)는 “다만 대형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상업적 성공만을 생각하지 않고 시장을 ‘만남의 장소이자 화제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상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니 ‘대박’

“이 시장에선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가 쉽죠. 그런데 아직 신식 커피머신을 들여 놓은 커피숍이 없더군요. 첫 장사를 시작하기에 매력적인 장소였죠.”

11일(현지 시간) 폴란드 크라쿠프 시 크로브데르스카 지역의 ‘스타리 클레파시’ 전통시장. 타마라 씨(22·여)는 친구와 함께 2주 전 이곳에 커피숍 ‘카와(KAWA·폴란드어로 ‘커피’)’를 열었다. 그는 “최근 폴란드산(産) 물건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곧 전통시장이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당찬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스타리 클레파시는 올해로 정확히 개장 604년이 됐다. 전 유럽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시장은 원래 시내 중심가의 중앙시장 광장에 있었지만 1996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6000m²(약 1800평) 규모의 부지에 자리 잡은 73개 상점이 과일 채소 꽃 생필품 등을 판다.

폴란드 크라쿠프 시 크로브데르스카 지역에 있는 ‘스타리 클레파시’ 전통시장은 설립된 지 600년이 넘은 곳이다. 11일(현지 시간) 오전 시장에서 상인들이 분주하게 야채와 과일 등을 팔고 있다.

시장 이전은 시 당국과 크라쿠프 상인조합의 전략적 검토에 따라 진행됐다. 시는 1970년대 이후 중앙시장 광장이 시장보다는 관광지로서 높은 가능성을 보이자 기존의 전통시장을 인근 부지로 옮기고 기존 광장은 관광상품으로 재구성했다. 시는 위치를 옮긴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새로운 부지를 장기 임대(2032년까지)해주고, 약 20%의 세금 감면 혜택도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존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상행위를 할 수 있게 하면서 새로 장사를 해보려는 상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정책은 기존 상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크라쿠프 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은 정부 정책에 힘입어 해마다 약 900만 명이 찾는 폴란드 최대의 관광 명소가 됐다. 한편 관광객이 늘면서 인근 전통시장들도 ‘낙수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크라쿠프 시의 관광홍보 담당자인 야쿱 샤틴스키 씨는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파는 팝업스토어 같은 다양한 시도가 먹혀든 것 같다”며 “중앙시장 광장을 찾은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인근 전통시장 상권도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라쿠프 시는 현재 유럽연합(EU) 6개 국가의 8개 도시가 2012∼2014년 진행하는 전통시장 개혁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성과가 단연 독보적이다. 이 덕분에 요즘에는 다른 나라의 전통시장 관계자들까지 성공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반드시 찾는 곳이 됐다.  

▼ “페북 마케팅… 젊은 상인 오니 시장도 변해” ▼

폴란드 크라쿠프 상인조합 부회장


11일(현지 시간) 폴란드 크라쿠프 시에서 만난 얀 날레파 크라쿠프 상인조합 부회장이 조합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폴란드 크라쿠프 시에는 시장의 역사만큼 오래된 ‘크라쿠프 상인조합’이 있다. 이 조합은 크라쿠프 안의 16개 전통시장 중 8개 시장(회원은 총 380명)의 연합체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은 시장 소상인들을 대변해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법적·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11일(현지 시간) 만난 얀 날레파 크라쿠프 상인조합 부회장(58)은 “변화하는 상권에 맞춰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면 전통시장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상인들과의 꾸준한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사례로 시장 한 곳에서 젊은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무료 와이파이 시설을 설치한 후 많은 손님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날레파 부회장은 “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온라인 마케팅은 젊은 상인들이 아니면 생각해내기 어렵다”며 “그들 덕분에 다양한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00년간 이어온 전통시장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날레파 부회장은 ‘상인의 생존’보다 ‘문화’라는 화두를 먼저 꺼내 들었다. “전통시장은 지역문화가 집약된 곳입니다. 가족들이 손을 잡고 시장을 찾을 때 지역문화도 오래도록, 그리고 더욱 창조적으로 계승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함부르크·크라쿠프=글·사진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