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대한민국 안전은]<中>우면산 산사태 3년 삶이 전쟁으로 바뀐 유가족
원망스러운 우면산 집 앞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 서초동 우면산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3년 전 산사태로 아들을 잃은 임방춘 씨에게 그 길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곳이고 우면산은 원망스러운 존재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 씨는 올 3월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본 큰아들(당시 28세)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동생을 따라갔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진다. 뒤늦게 발견한 큰아들의 일기장엔 ‘너무 힘들다. 동생이 살아왔으면 좋겠다. 외롭다’와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섬세한 아이였어요. 동생이랑 유달리 사이도 좋았죠. 동생 잃은 슬픔을 표현도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다가도 우울해져서 아들을 따라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사건에서도 나중에 제 아들처럼 추가 피해자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나요.”
남편 김형남 씨(당시 54세)를 잃은 김일영 씨(57)는 사고 후 반년 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만 겨우 잠을 잤다고 한다. 사고 직후 서초구 공무원들이 관악구 주민인 김 씨 남편 빈소에 조문도 오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현실이 한스러웠다.
“진작 산을 정비했더라면, 비가 내릴 때 재빨리 도로를 막아 출입을 통제했더라면 내 남편이 그렇게 가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잠이 안 왔어요.”
사고 1년 뒤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 씨는 반신마비 증상이 왔고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계속된 치료로 이제 거동엔 문제가 없지만 아직도 오른쪽 손발이 저려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 생각은 못한다.
서울 서초구 전원마을에 사는 이혜경 씨(44·여)는 지난해 장마철, 아들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시커먼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자 산사태 때 상황이 떠올라 무서워서였다. 학교엔 “비가 많이 와서 애들을 보낼 수 없다”고 연락했고 결국 결석 처리됐다. 3년 전 그날 오전 7시 40분, 비가 억수같이 내리자 이 씨의 아버지 이응규 씨(당시 76세)가 “세입자들 방에 물이 들어올까 걱정된다”며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다. ‘쿠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토사가 담을 넘어 1층을 덮친 건 순식간이었다. 한순간에 남편을 잃은 이 씨의 어머니는 낯선 곳에 가면 불안해지고 좌불안석이 되는 공황장애가 왔다.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토사에 파묻힌 할아버지를 손으로 파낸 이 씨의 아들딸은 장례식 때 “할아버지, 미안해”라며 울었다. 아이들과 어머니가 걱정돼 서초구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한 이 씨는 “심리 지원을 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담당 직원은 “그렇게 지원한 예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울시는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 상담 지원을 1년 뒤인 2012년 7월부터야 실시했다.
2011년 7월 27일 우면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도로에 흘러넘치고 인근 아파트에도 쏟아져 들어갔다. 동아일보DB
아버지를 돕다 돌아서던 아들을 쓰러지던 상수리나무가 덮쳤다. 그 전해 태풍 곤파스로 뿌리가 드러난 채 기울던 상수리나무였다. 임 씨는 마을을 방문한 서초구청장에게, 혹은 다른 일로 마을을 찾은 서초구 공무원들에게 수시로 ‘저 나무가 곧 쓰러질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숨지고 난 뒤 서초구청을 찾아 “내가 진작 나무를 치우라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지만 “정식으로 민원이 접수된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임 씨는 “자다가도 화가 나 벌떡 일어나고, 길을 걷다 아들 또래만 봐도 눈물이 났다”며 “이제는 ‘혹시 어딘가에 내 아들이 살아있지 않을까’란 이상한 생각도 든다”고 호소했다. 그는 “속 시원한 원인 진단이 나오고 누군가가 책임지지 않는 한 내 속앓이는 고쳐지지 않는다”며 심리치료도 거부하고 있다.
다른 피해자들도 여러 형태로 산사태의 여파를 겪고 있었다. 한 피해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탈모 증상을 겪었고, 집이 반파(半破)된 피해자는 “베란다 너머 우면산을 보면 또 금방이라도 돌이 굴러올까 무서워 대낮에도 매일 커튼을 치고 산다”고 호소했다. 몇몇은 사고 이후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이사했고, 여전히 우면산 인근에서 사는 사람들은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3년 전 상처가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유족들은 입을 모은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잊고 현실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잊나요. 지금도 고개만 숙이면 가슴팍에 응어리진 감정 때문에 울지 않을 수 없는걸요.”
유족들은 서울시와 서초구, 국방부 등을 상대로 4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 우면산 산사태 ::
▼ 책임회피 거짓말 서초구, 징계는 ‘0명’ ▼
“산림청 경고 문자메시지 못받아”… 공무원들 발뺌, 반짝 논란뒤 잠잠
우면산 산사태 피해자들은 가족과 재산을 잃은 충격에 한 번 상처를 받고, 이후 이어진 공무원 정치인들의 무성의한 태도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가족들은 “세월호 사고 이후 정치인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2011년 7월 27일, 우면산 산사태가 난 직후 서초구청은 거짓말을 연발했다. 사고 전날 산림청에서 산사태 경고 문자메시지(SMS)를 각 지자체 해당 직원에게 보냈지만 서초구는 담당 직원이 바뀐 걸 알리지 않아 엉뚱한 직원이 메시지를 받았다. 그 사실을 알고도 “문자를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진익철 당시 구청장은 이 내용을 보고 받고도 “모른다”고 했다. 이후엔 몰래 산림청 시스템에 새로운 직원을 등록했다. 이 ‘거짓말 릴레이’는 당시 언론에 보도되며 크게 논란이 됐다.
그러나 논란은 그때뿐이었다. 본보가 서초구청에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해 누가 책임을 지거나 징계를 받았는지 질문했지만 돌아온 답은 “책임지거나 징계받은 사람은 없다”였다.
산사태가 났을 때 정치인들은 앞다퉈 현장을 찾았다. 찾아서 하는 일은 당명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이 “무너진 집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항의해도 들은 척 만 척했다.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찾아오는 정치인들도 달랐다. 오세훈 시장 때는 민주당 관계자들이 유족들을 찾아와 “도와주겠다”며 악수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자 반대로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찾아와 유족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족들은 “정치인들은 (우면산 산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부주의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4월 원인을 ‘천재지변’으로 결론 내린 1차 원인조사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2011 수해백서’에 기록했다. 당시엔 산사태 발생 지역 중 일부만 조사한 보고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어 2차 원인조사가 이뤄지던 때였다. 유가족들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내용을 확정적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항의하자 서울시 측은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주석을 달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뒤늦게 관련 설명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