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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1장 안쓰고 전화로 “네 네”… 7000만원 대출보증 통과

입력 | 2014-07-16 03:00:00

[서민 눈물탑 대부업체 대출 10조]<上>빚 권하는 업체들




《 회사원 강모 씨(29·여)는 지난해 5월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대출 보증을 섰다.
그는 강 씨를 보증인으로 내세워 대부업체 9곳에서 7000여만 원을 빌렸다. 강 씨는 서류 1장 쓰지 않고 ‘보증을 서는 데 동의하느냐’는 대부업체 직원에게 전화로 “네”라고 대답만 했고
보증계약은 일사천리로 체결됐다.
보증을 선 기억조차 희미해진 올해 초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대신 돈을 갚으라는 대부업체의 전화였다. “회사로 찾아 가겠다” “가족이 무사할 줄 아냐”며 매일 걸려오는 독촉 전화에 강 씨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이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대부업체 직원과 아버지가 맞닥뜨린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올 초 강 씨를 상담했던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사연만 보면 불법업체의 횡포 같지만 돈을 빌려준 9개 대부업체는 모두 정식 등록돼 있는 규모가 큰 곳”이라며 “등록, 미등록 업체를 가리지 않고 탈법 행위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 문턱 낮은 대부업체

연 30%가 넘는 높은 이자에 불법 영업이 사라지지 않는데도 소비자들이 대부업체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15일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가 대부업체 10곳을 대상으로 전화상담을 한 결과 5개 업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2곳은 아르바이트로 소득이 있을 경우 최대 2000만 원까지 대출해 줄 수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3곳은 대학생이라 소득이 전혀 없어도 300만 원까지 바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금리는 모두 현재 법정 상한선인 연 34.9%가 적용됐다.

또 이 업체들은 대출자가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우편으로 주민등록등본, 계약서 등을 주고받거나 휴대전화로 문자 승인을 받으면 대출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계연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대학생이나 직장 초년생이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대부업체를 찾았다가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기도 전에 고금리 피해를 보면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턱 낮은 대출 행태는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올해 초 대부업체 이용자 3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응답자 35%는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 대출이 안 돼서’ 대부업체를 이용한다고 했다. 24%는 ‘신속하게 대출이 안 돼서’, 24%는 ‘대출금액이 적어서’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 경기침체 덕에 폭발적인 성장세

한국의 대부업은 ‘명동 사채시장’에서 시작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자 사채업체를 이용했다가 고금리로 고통 받는 서민이 급증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 ‘대부업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최고금리를 연 66%로 제한했다. 또 대부업체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시켰다. 대부업 양성화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일본계 대부업체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대부업체의 대형화, 기업화가 진행됐다.

안전행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가 발표한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등록 대부업체 및 대부중개업자는 9326개로 1년 전보다 14.4% 급감했다. 2009년 말 1만6000개에 육박했다가 꾸준히 줄어 1만 개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부업 최고금리가 2007년 10월 49%로 조정된 뒤 올 4월 연 34.9%까지 떨어지자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한 영세업체가 대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대부업 전체 시장은 오히려 성장세를 거듭했다. 경기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중산층과 서민들이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손쉽게 대출 받을 수 있는 대부업체로 몰렸기 때문이다. 자산 100억 원 이상 대형업체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하며 작년 말 역대 최대치인 144개로 늘었다. 대부업 상위 5개 업체인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산와대부(산와머니), 웰컴대부(웰컴론), 리드코프(리드코프), 바로크레디트대부(바로론)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말 46.5%였다.

김영식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실직 등으로 늘어난 자영업자도 대부업체 성장에 한몫했다”며 “문제는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늘면 이를 갚기 위해 다른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 끊이지 않는 대부업 피해신고

대부업 대출 잔액 10조 원 시대가 열렸지만 소비자 피해 신고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불법 채권 추심 민원은 240건으로 1년 전보다 32.5%가 늘었다. 법적 상한선을 넘는 고금리를 호소하는 이자율 관련 민원은 165건으로 전년 대비 20.4%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도 불법 추심과 고금리와 관련된 피해 신고는 각각 130건, 125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총리실 주도로 범정부 차원의 ‘불법 사금융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금융당국이 불법 추심 등을 근절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 채권추심 가이드라인 발표까지 했는데도 탈법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헌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대부업체는 연체이자가 너무 커 대출자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지하경제 규모를 키우고 건전한 자본시장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크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신치영 경제부 차장
편집국 정임수 송충현(경제부) 강홍구 기자(사회부)
채널A 황승택(경제부) 이상연(소비자경제부) 정동연 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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