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섬이라고 알려진 라파누이(칠레)의 상징적인 유물 모아이를 담은 그림엽서.
이스터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다. 그 위치는 우리에게 낯익은 하와이를 기준 삼아 설명하면 좀더 알기가 쉽다. 하와이에서 남쪽으로 적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다 보면 타히티라는 아름다운 섬을 본다. 지구 마지막 휴양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섬은 폴리네시아의 수도 섬이고 폴리네시아는 118개 섬으로 이뤄진 광대한 바다(유럽 대륙에서 러시아를 뺀 면적)를 영토로 삼은 섬나라(프랑스령)다. 이스터 섬은 그 타히티와 칠레(남미 대륙)의 산티아고를 잇는 항공로상에 있다. 그 길로는 라탐 항공(칠레)이 운항하는데 이스터 섬(남위 27.7도, 서경 109.22도)까지 타히티에선 다섯 시간, 산티아고에선 네 시간 반 거리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라파누이(Rapa Nui)다. 망가레바어 지명인데 망가레바는 섬에서 서쪽 2600km 거리 감비에르 제도(폴리네시아)의 한 섬. 라파누이의 폴리네시안 원주민이 떠나온 고향이다. 이들이 섬에 정착한 건 서기 700∼1200년 사이. 그때만 해도 섬은 풍요로웠다. 20m가 넘는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뤘고 새들이 서식했다. 부족도 번성해 1만 명을 헤아렸다. 그런데 그게 문제를 낳았다. 자원 부족이다. 경작지를 넓히다 보니 숲이 해쳐졌고 그 바람에 토양 침식이 가속돼 경작지가 줄고 먹을 것이 부족해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부족 간에 벌어진 식량 탈취 전쟁이다. 자원 고갈과 식량 부족에는 모아이도 한몫했다. 세 과시용 모아이가 대형화하며 운반수단인 굴림용 통나무 수요도 늘었다. 숲 황폐화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조상을 상징하는 모아이는 씨족의 수호신이다. 그래서 씨족마다 거주지에 제단(아후)을 쌓고 모아이를 세웠다. 그런데 빼앗기 전쟁이 시작되면서 덩달아 모아이도 수난을 겪는다. 더이상 항거하지 못하게 모아이를 쓰러뜨린 것이다. 전쟁은 섬 전체로 확산됐고 모아이는 남아나지 않게 됐다.
숲의 해체는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배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섬에서 배는 생존수단이다. 단백질 섭취원인 생선을 잡지 못함은 물론이고 바다 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급기야는 섬에서 도망칠 수조차 없게 됐으니 그 절망감에 섬은 도탄에 빠졌다. 그게 1760년대. 섬에 남아 있는 ‘조인(鳥人) 결투’ 유적은 그때 조성된 역사의 현장이다. 조인 결투란 산기슭에서 해변까지 뛰어 내려간 다음 수영으로 거친 파도를 헤치고 암초에 올라가 검은제비갈매기 둥지에서 알을 꺼내오는 죽음의 레이스. 승자의 씨족에겐 1년간 농토가 제공됐다. 반면 패자는 스스로 창을 찔러 자해하도록 시켰다.
라파누이의 287개 모아이는 바다를 등진 채 씨족을 향한다. 예외로 단 한 개만이 바다를 향한다. 그 모아이가 응시하는 곳은 고향 망가레바. 그 회한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이렇게 될지 모른다고. 욕심을 버리고 화합하지 않으면 말이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