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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초 삼성출신 거물 CEO ‘모셔 온’ 기업들, 표정 살펴보니…

입력 | 2014-07-17 03:00:00

SK 미소… 동부 울상, KT 진땀




《 올해 초 재계에선 삼성 출신 ‘C-레벨급’(CEO, CFO 등 최고위 임원) 거물들의 이동이 화제가 됐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영입한 KT를 시작으로 SK와 동부, 한화 등이 잇달아 삼성 출신 고위 인사들을 ‘모셔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출신들에 대한 ‘러브콜’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졌지만 부사장 이상 고위 임원들이 줄줄이 이동한 것은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한 조사 결과 국내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삼성그룹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반년이 지난 현재, 이들 삼성맨은 옮긴 회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
○ 삼성맨 영입에 따른 명암(明暗)

황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대규모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KT에선 “나태했던 조직의 타성이 사라졌다”는 평가와 함께 “업무 강도가 삼성처럼 높아졌다”는 볼멘소리가 공존한다. 한 부장급 직원은 “황 회장이 전문성과 성과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위(임원)부터 바뀌더라”며 “과거보다 조직이 투명해지고 시스템이 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내 게시판 등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조직 문화를 무시한 채 직급제를 부활시키는 등 삼성 스타일을 밀어붙인다”는 지적부터 “업무는 삼성 수준으로 세졌는데 월급은 그대로”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황 회장 취임 이후 언제부턴가 야근이 일상이 됐다”며 “사업부문별로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주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부 인재들이 영입돼 KT의 체질을 개선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라면서도 “다만, 지나친 성과주의나 노동조합과의 갈등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삼성맨을 CEO로 영입해온 동부그룹은 삼성 출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최근 경영위기가 닥친 탓이다. 얼마 전 물러난 이재형 전 동부대우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그 뒤를 이어 영입된 최진균 부회장과 최창식 동부하이텍 사장, 허기열 동부 사장 등이 모두 삼성 출신이다.

동부의 한 직원은 “회사 상황에 맞지 않게 삼성처럼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확대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외부 수혈인력이 많다 보니 내부적으로 공채 출신과 삼성 출신, LG 출신 등 3, 4개 파벌로 나뉘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파워게임이 적지 않았다는 뒷말도 있다"고 전했다.

한 헤드헌팅 업체 이사는 “삼성은 최근 10년간 동부가 현재 겪고 있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며 “애초에 삼성맨들을 데려가 난국을 타개해 주길 바랐던 것이 무리였다”고 분석했다.

반면 SK는 업계 최고 전문가를 제대로 영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SK는 올해 1월 임형규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성장추진 총괄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개발본부장(부사장)과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등을 역임했다.

임 부회장은 최근 중국 정웨이(正威)그룹과 손잡고 중국 내 ICT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등 자신의 전문 분야인 반도체와 SK그룹의 통신 사업 간에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SK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따로 만나 임 부회장에게 SK하이닉스의 경영을 직접 맡기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삼고초려 끝에 데려온 인물”이라며 “비메모리 반도체와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삼성에 밀리는 SK하이닉스가 삼성의 ‘기술’과 ‘네트워크’를 적재적소에 도입했다는 평”이라고 전했다.  

▼ 삼성DNA 장점 많지만 기업 특성 고려해야 ▼


○ “삼성 방식이 정답은 아냐”


인사 전문가들은 삼성 DNA 이식에는 장단점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삼성 특유의 강력한 업무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다른 기업들, 특히 시스템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으로 옮겨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그들은 본다. 다만, 삼성식(式) 문화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기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삼성웨이(Samsung Way·삼성 방식)’를 도입했다가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마다 도입, 성장, 성숙기가 따로 있는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단계의 작은 기업들이 삼성 방식을 추구하다가는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한 중소기업은 삼성의 전자계열사 임원 출신 A 씨를 영입한 뒤 골머리를 앓고 있다. A 씨는 마케팅, 개발, 영업 조직이 따로 있는 대기업 방식을 직원이 30명에 불과한 회사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외근이 잦은 직원들에게 노트북 반출 시 보안 결재를 받으라는 규정을 새로 만드는 등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삼성의 문화나 제도, 시스템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표준은 아니다”라며 “삼성 출신들이 삼성이라는 지붕을 떠나 다른 회사로 옮겼을 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황태호 기자

유태영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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