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미소… 동부 울상, KT 진땀
《 올해 초 재계에선 삼성 출신 ‘C-레벨급’(CEO, CFO 등 최고위 임원) 거물들의 이동이 화제가 됐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영입한 KT를 시작으로 SK와 동부, 한화 등이 잇달아 삼성 출신 고위 인사들을 ‘모셔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출신들에 대한 ‘러브콜’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졌지만 부사장 이상 고위 임원들이 줄줄이 이동한 것은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한 조사 결과 국내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삼성그룹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반년이 지난 현재, 이들 삼성맨은 옮긴 회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
○ 삼성맨 영입에 따른 명암(明暗)
사내 게시판 등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조직 문화를 무시한 채 직급제를 부활시키는 등 삼성 스타일을 밀어붙인다”는 지적부터 “업무는 삼성 수준으로 세졌는데 월급은 그대로”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황 회장 취임 이후 언제부턴가 야근이 일상이 됐다”며 “사업부문별로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주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삼성맨을 CEO로 영입해온 동부그룹은 삼성 출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최근 경영위기가 닥친 탓이다. 얼마 전 물러난 이재형 전 동부대우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그 뒤를 이어 영입된 최진균 부회장과 최창식 동부하이텍 사장, 허기열 동부 사장 등이 모두 삼성 출신이다.
동부의 한 직원은 “회사 상황에 맞지 않게 삼성처럼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확대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외부 수혈인력이 많다 보니 내부적으로 공채 출신과 삼성 출신, LG 출신 등 3, 4개 파벌로 나뉘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파워게임이 적지 않았다는 뒷말도 있다"고 전했다.
한 헤드헌팅 업체 이사는 “삼성은 최근 10년간 동부가 현재 겪고 있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며 “애초에 삼성맨들을 데려가 난국을 타개해 주길 바랐던 것이 무리였다”고 분석했다.
반면 SK는 업계 최고 전문가를 제대로 영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SK는 올해 1월 임형규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성장추진 총괄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개발본부장(부사장)과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등을 역임했다.
▼ 삼성DNA 장점 많지만 기업 특성 고려해야 ▼
○ “삼성 방식이 정답은 아냐”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기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삼성웨이(Samsung Way·삼성 방식)’를 도입했다가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마다 도입, 성장, 성숙기가 따로 있는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단계의 작은 기업들이 삼성 방식을 추구하다가는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삼성의 문화나 제도, 시스템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표준은 아니다”라며 “삼성 출신들이 삼성이라는 지붕을 떠나 다른 회사로 옮겼을 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황태호 기자
유태영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