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2000년대 중반 김 과장이 은행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화끈한 휴가’는 꿈도 못 꿨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 달이나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는 ‘딴 세상’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눈치가 보여 휴가 기간을 다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굳이 찍히기 싫었다. 하지만 회사가 휴가 소진 비율을 부서장의 인사 고과에 반영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부서장은 자신의 인사 고과를 위해서라도 부서원들의 휴가 소진을 독려할 수밖에 없었고, 김 과장을 비롯한 부원들은 모두 휴가를 다 쓰게 됐다.
안타깝게도 김 과장 같은 직장인은 아직 한국에 많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최근 국민 12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45.3%나 됐다. 그나마 주어진 휴가조차 가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응답자들은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로 ‘여가 시간 및 마음의 여유 부족’(65.7%), ‘여행비 부족’(18.9%), ‘건강상의 이유’(16.3%) 등을 꼽았다.
휴가가 가져올 내수 진작 효과도 무시 못한다. 정부는 최근 여름휴가(3일 기준)를 통한 생산 유발 효과가 6조3658억 원, 고용 유발 효과가 4만9632명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소비 침체로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이 유력시되는 요즘 같은 때에는 이런 효과가 절실하다. 이달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기업인들은 올 하반기(7∼12월)에는 ‘내수 부양이 시급하다’(35.0%)고 답했다. 정부는 전 부처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하루 더 가기’를 장려하기로 했고, 경제단체들도 ‘여름휴가 국내에서 보내기’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휴가 자체가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행복감일 것이다. 휴가를 장려하는 범(汎)국민적 캠페인을 계기로 휴가에 대한 철학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경기가 좋아져도 변함없이 말이다. 잘 놀아야 일도 잘한다. 그러하므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기왕이면 국내로.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