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4>알 권리 막는 공공언어 세대간 언어장벽 되는 ‘은어’
한때 이런 암호 같은 말들이 우리 언어의 일부가 된 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때다. 액정화면에다 숫자만을 표시하던 시절 소통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 이런 형태의 암호와 같은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중들은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여기에 맞게 새로운 형태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특히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통신 언어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신조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언어들은 세대 간 언어장벽이 되기도 한다. 젊은층이 쓰는 변형된 언어습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소년 은어사전’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앱에는 가령 ‘귀요미’라는 말에 대해 ‘(인기 스타의)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귀여운 이미지를 가진 이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말. 쉽게 말해 귀염둥이 멤버를 보고 팬들은 귀요미라고 부르고 있음’이라고 설명한다.
또 ‘닥본사’는 닥치고 본방송 사수, ‘부없남’은 부러울 게 없는 남자를 의미한다. 청소년들은 이런 은어를 통해 그들만의 언어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청소년들이 우리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엉터리로 쓰기 위해 이런 축약형 은어를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니다. 박동근 건국대 교수(국어학)는 “통신 언어는 실시간 대화이다 보니 빠른 응답이 필요하다”며 “결국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무료 문자서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휴대전화의 단문메시지는 80자로 한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요금을 아끼기 위해 축약을 하거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언어습관이 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났다. 또 인터넷 글의 홍수 속에서 조금이라도 주목받는 글을 쓰기 위해 과도한 과장이 섞인 언어습관이 더 굳어지기도 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