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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만원 빌려 9700만원 갚아… 그래도 남은 빚 2100만원

입력 | 2014-07-18 03:00:00

[서민 눈물탑 대부업체 대출 10조]<下> 법정 금리 비웃는 ‘폭탄금리’




5200만 원을 빌리고 9700만 원을 갚았다. 그러나 아직 2100만 원의 빚이 더 남았다. 높은 금리 탓에 아무리 갚아도 빚은 늘기만 했다. 생활비가 필요해 한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던 박모 씨(34·여)의 삶은 ‘폭탄 금리’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과 이혼한 뒤 중학생 아들과 살던 박 씨는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높은 금리 탓에 아무리 갚아도 원금은커녕 이자 내기조차 빠듯했다. 이자를 갚으려고 다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박 씨에게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는 연 30%의 금리를 적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박 씨의 민원을 접수한 한 시민단체가 조사해 보니 연 76%의 금리를 물리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법정 금리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높은 이자를 받았다. 박 씨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10명 중 3명, 법정 이자율 넘는 이자 내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 금리는 연 34.9%로 최근 10여 년간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여러 편법을 동원해 법정 상한선보다 높은 금리를 물리는 대부업체가 많아 고금리 피해 사례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대부업체를 이용한 채무자의 34%가 법정 최고 이자율을 초과하는 금리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금리가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대부업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최근 한 대부업체는 서울 강남 인근에서 자영업자와 유흥업소 종사자 908명을 대상으로 연 722%에 이르는 고금리를 챙겨 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채무자가 법정 이자율보다 높은 금리를 물었다며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대부금융협회가 올해 상반기(1∼6월)에 접수한 고금리 관련 민원은 총 125건으로 작년 상반기(75건)와 비교해 67% 증가했다.

○ 고금리 주범은 연체이자

법정 이자율을 넘는 고금리를 받는 대부업체들은 대부분 법정 이자율 이내로 대출 계약을 맺은 뒤 채무자가 연체할 때 높은 금리를 물리고 있었다. 더구나 채무자들은 자신들이 연체 이자를 얼마나 내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대부업체를 이용한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계약서에 적힌 금리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관련 법에 따르면 대부업체들은 연체 이자를 포함해 연 34.9%의 금리를 넘겨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연체금리를 높게 책정하는 식으로 고금리를 챙긴다. 대부업체 이용자의 14%는 금리 규정조차 모른 채 대출을 받고 있다. 고금리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무자도 31%에 이른다.

회사원 김모 씨(30)는 한 등록 대부업체로부터 270만 원을 빌린 뒤 원리금 상환일을 하루 어기자 이자 6만 원을 추가로 내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상당수 대부업체가 신용도에 상관없이 모든 대출자에게 법정 최고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금융당국이 이자율 상한선을 정해줬더니 모든 상품에 대해 대출 금리를 연 34.9%로 받고 있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대부업체들의 금리 담합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 금리 더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와

국내 대부업체의 금리는 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경우 대부업체에 적용되는 상한선은 각각 20%와 18%다. 외국에 비해 한국에서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보니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일본계 대부자금이 한국으로 넘어와 적잖은 수익을 올린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점을 들어 대부업체의 이자 상한선을 현재보다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부업체 금리 상한선을 현재보다 약 10%포인트 낮은 연 25%로 조정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대부업체의 법적 최고 금리를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부업체의 영업이익률이 약 5%인 상황에서 금리를 추가로 낮추면 문을 닫는 대부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을 닫은 업체는 미등록 대부업체 등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오히려 사금융 시장의 금리를 높이는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금리를 낮출 수 없다면 정부가 서민 전용 금융상품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은 복지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정부가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소규모 대출 지원을 늘리면 대부업체들의 고금리로 고통 받는 서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신치영 경제부 차장
편집국 정임수 송충현(경제부) 강홍구 기자(사회부)
채널A 황승택(경제부) 이상연(소비자경제부) 정동연 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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