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지원 소방헬기 추락] 기장, 5305시간 비행 베테랑… SNS엔 ‘바람아 멈추어 다오’
17일 불의의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강원도소방본부 정성철 기장의 아내(49)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울먹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는 이날 오전 전화로 “오늘 돌아오는 거죠”라고 물었고 정 기장은 “기상 상태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는데 이 짧은 통화가 부부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사고를 예감이라도 한 걸까. 정 기장의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바람아 멈추어 다오’라는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정 기장은 비행 조종 5305시간의 베테랑. 육군 항공대에서 준위로 전역한 뒤 2005년 12월 소방에 입문했다. 항공 교관 자격은 물론이고 한국 미국 호주 등 3개국의 ‘회전익 운송용 조종사’ 면장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평소 동료들에게 화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5명이 한 팀을 이뤄 임무를 수행하기에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비로 음식을 준비해 팀원들과 등산을 하고 직원들의 경조사를 꼼꼼히 챙겼다. 한 동료는 “팀장이자 맏형으로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자랑스러운 조종사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정비사인 고 안병국 소방장은 공군에서 14년 동안 항공기 기체 정비를 담당했고 2009년 11월 소방관이 됐다. 안 소방장은 최근 아버지(78)가 급성 폐렴으로 경기 성남의 한 병원에 입원하자 1개월 동안 춘천과 성남을 오가며 간호할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체력 단련을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는 등 자기관리에도 열성적이었다. 안 소방장은 아내와 6세 아들, 3세 딸을 두고 있다.
특전사 출신의 고 신영룡 소방교는 2005년 2월 소방관의 길에 들어섰다. 쉬는 날이면 초등생인 두 딸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자상한 아빠였다. 특히 자녀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 암벽 등반 훈련장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는 사고 발생 직전 강원도소방본부에 휴대전화로 “날씨가 좋지 않아 춘천으로 복귀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팀의 막내 고 이은교 소방사는 9월 28일 약혼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소방사는 특전사를 거쳐 2010년 소방관의 길을 택했다. 그는 한 블로그에 ‘소방관이라는 이름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희생을 각오했다고 생각한다’고 적어놓았다. 그는 지방직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고 1시간 전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한 신문에 기고한 ‘소방관들의 정당한 외침’이라는 글을 SNS에 공유했고 지난달에는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도 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