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계수학자대회 D-26]<1>수학 불모지서 중심국으로
2010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는 109개국에서 수학자 3175명이 참석했다(위 사진). 이 대회 폐막식에서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가 차기 수학자대회 개최국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2014 서울 세계수학자 대회(서울 ICM)’를 소개했다(아래 사진). 서울 ICM은 8월 13∼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2009년 4월 19일 중국 푸저우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국제수학연맹(IMU) 집행위원회가 서울을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ICM) 개최 도시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올해 8월 13일, 드디어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수학자 5000명이 모이는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린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메달
기막힌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8년 전인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IC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회에는 한국인 수학자로는 처음으로 김정한 오용근 황준묵 교수 등 3명이 연사로 초청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는 “당시 정말 많은 분이 축하 e메일을 보내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면서 “각국 수학계가 ICM에 자국의 초청 강연자가 몇 명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IMU에서 한국의 지위는 칠레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IMU는 회원국의 수학 논문 수를 토대로 최저 1그룹에서 최고 5그룹으로 나누는데, 당시 한국은 2그룹으로 하위권이었다.
진짜 사건은 대회 중 열린 ‘한국 수학의 밤’ 행사에서 벌어졌다. 당시 대한수학회 회장이었던 민경찬 연세대 교수가 2014년 ICM을 한국에서 유치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수학계에서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의 깜짝 선언에도 유치가 불가능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꿈은 이뤄진다’는 신념 속에 수학자들의 노력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박형주 서울 ICM 조직위원장(포스텍 수학과 교수)은 이후 세계 수학 저널을 다 뒤져 한국인 수학자의 논문 수를 종합한 끝에 2007년 한국을 4그룹으로 한번에 2단계나 뛰어오르게 만들었다. 이 일로 한국은 세계 수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박 위원장은 “4그룹 진입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ICM 유치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밝혔다.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았다. 2014년 대회 유치를 선언한 나라들이 쟁쟁한 전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ICM을 두 번이나 개최하면서 쌓은 경험을 앞세웠고, 브라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며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다.
한국만의 필승 카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국내 수학자들이 난상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개발도상국 수학자들이 ICM에 대거 참여하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1970, 80년대 한국 수학자들이 ICM에 참가하기 위해 IMU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았던 만큼 이제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수학자를 지원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개도국 수학자 1000명을 위한 여비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나눔(NANUM)’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IMU에 이 프로그램을 공지한 결과, 세계 각지에서 3608명이나 응모하며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다.
결국 나눔 프로그램은 한국이 제출한 ICM 유치제안서의 핵심이 됐다. IMU 역시 개도국위원회 예산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결국 서울 ICM은 ‘늦게 출발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다음 달 개최를 앞두고 있다.
서울 ICM 개막식에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시상식이 열리고, 저녁에는 미국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출신의 세계적 펀드매니저인 제임스 사이먼스의 대중강연도 진행된다. 매일 세계 수학 석학들의 기조강연과 초청강연이 진행되며 14일에는 황준묵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기조강연에 나선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