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조사 과정과 취지에는 박수를 보내나 부작용이 우려됐다. 해당 학원들의 실명과 선행 속도를 그대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중 진도가 특히 빠른 한 학원에 며칠 전 전화를 걸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여름방학 특별반이 평소보다 빨리 마감돼 대기조차도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선행학습 조사 결과가 광고 효과를 낸 셈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은 학원의 선행교육 자체는 막지 않지만 이를 선전·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는 어쩌면 ‘마지막 선행 광고’가 될지 모른다.
어쩌다 다들 선행 경쟁에 뛰어들게 됐을까? 과연 선행학습과 성적이 비례하긴 하는 걸까? 경륜이 쌓인 교사나 학원 관계자를 만나면 꼭 물어본다. 특히 사교육 업계에서 스타 강사나 진학지도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이들에게는 꼬치꼬치 캐묻곤 한다. “정말 선행학습 많이 한 애들이 대학 잘 가나요?”라고.
몇 년 동안 축적한 답을 종합하면 결과는 ‘아니올시다’ 쪽으로 기운다. 공부에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면 선행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대다수 아이는 제 학년 진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 이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선행을 하고 있으니 뒤처질 수 없는 탓이다. 그나마 아이가 어릴 때는 ‘나는 선행학습 따위는 안 시키겠어’라고 다짐하던 부모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만 한글을 몰라서 수업에 방해가 되네요” 혹은 “△△만 영어를 전혀 못해서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학원으로 뛰어가기 마련이다.
한 유명 학원장은 이런 현실을 ‘개판 공연장’이라고 부른다. 모두 앉아서 공연을 보다가 누군가 자기만 좀 더 잘 보겠다고 일어서면 뒷자리 관객들이 줄줄이 일어난다. 어느새 모두 일어나면 전보다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다리만 아픈 바보 같은 형국이 된다.
현재 사교육의 손길이 미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우리가 스탠딩 콘서트를 감당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님을 고민해야 한다. 부모 세대에 비해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과 생활물가를 감당하면서 선행학습 비용까지 쏟아 붓기엔 위태롭다. 퇴직 이후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나긴 노후를 보내려면 차분히 앉아서 체력을 비축해야 할 세대다.
문제는 개판 공연장에서 누가 먼저 앉을 것인가이다. ‘모두 앉기 법’을 만든다 한들 내 자식만 공연을 못 볼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한 누군가는 몰래, 누군가는 처벌을 감수하고, 누군가는 법을 욕하며 서 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앉고자 하는 결단과 연대가 필요하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